신현대
申鉉大1889. 11. 3 ~ 1924. 8.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단
- · 고려혁명군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1889년 11월 3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북부면(北部面)에서 태어나 정지용(鄭芝蓉)과 사이에서 외동딸 신음전(申音全)을 두었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사위는 김동하(金東河)다. 일제 기밀문서에 따르면 “원 한국시대의 소좌”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보아 1910년 이전에 대한제국 군대의 참령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16년 국내 최대 항일단체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김좌진(金佐鎭)·노백린(盧伯麟) 등과 함께 가입한 뒤 만주로 건너갔다. 1920년 12월에 결성된 대한독립군단이 1921년 6월 자유시참변을 겪고, 1922년 김좌진이 대한독립군단을 재조직하여 총사령관이 되었고, 본부를 중소 국경지대인 동녕현(東寧縣)에 두었다. 이에 동녕현에서 김좌진의 무기 자금 모금 활동을 도왔다. 1923년 5월 무기 자금 모금을 위해 박영효(朴泳孝)·한규설(韓圭卨)·차경석(車京石) 등 앞으로 보내는 김좌진 명의의 「공함」, 그리고 5월 28일자 권태진(權泰震)과 자신 2인 명의의 「소개장」을 참모 유민식(兪民植)에게 주어 같은 해 6월 20일경 서울로 잠입시켰다. 그러나 그 해 7월 상순 유정근(兪政根)이 김병희(金秉熙)를 비롯한 6인을 만나 박영효 등에게 보내는 공함과 소개장을 전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무기 자금 모집은 실패하고 말았다. 1923년 5월 연길현에서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이 재조직되자 1924년 5월 동녕현 삼차구(三岔口)에서 단원 70명을 모집하여 일단(一團)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독립사상을 가지고 항상 국권회복을 외치면서 공산주의를 수용하지 못해 청년 단원들도 반공산주의 사상을 견지하고 반소비에트적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소련 적군 측에서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시의 게페우(비밀경찰)에서 처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고려혁명군 사령 허승환(許承煥)을 불러 모종의 협정을 맺었다. 그 뒤 (음)7월 15일 중소 국경 부근 남(南) 시베창(西比廠) 고려혁명군 주둔지를 소련 적군 100여 명이 포위하였고, 단원들은 각자 총기를 휴대하고서 뒷산으로 도주하였다. 도주하지 못한 단원들은 붙잡혀 무장해제를 당하고 결박당한 채 구인되었다. 산중 은신처에서 이를 지켜본 부하 13인은 “모두 살해될 것”이라고 추측하여 일제히 소련군을 향해 발포하였다. 그러나 결국 붙잡혀 총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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