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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선

吳恒善

1910. 10. 3 ~ 2006.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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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항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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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만주방면

지도 위치

광역 지역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중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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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북로군정서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10년 10월 3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태어났다. 본적지는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용문면(龍門面) 성당리(聖堂里)이다. 본관은 신천(信川)이며 본명은 오옥인(吳玉仁)이다. 만주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신민부(新民府) 등에서 활동하였다. 양친은 황해도 신천 출신으로, 1900년경 만주로 이주하였다. 부친 오사언(吳仕彦) 역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만주지방총회 석두하자 지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영향으로 역시 어린 나이부터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7년에는 북로군정서 출신 독립군이자 김좌진(金佐鎭)의 측근인 유창덕(兪昌德)과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을 두었으며, 함께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부터 당시 신민부(新民府) 중앙집행위원장이었던 김좌진의 지시를 받고 무기 운반과 은닉, 외부와 연락하는 임무를 맡아 수행하였다. 1928년 1월 25일 신민부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40여 명의 부원이 석두하자에 모였는데, 하얼빈(哈爾濱) 일본총영사관 경찰서에서 이 정보를 탐지하고 습격하여 신민부 간부 김혁(金赫)·유정근(兪正根) 등 12명을 체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때 무사히 피신하여 다른 동지들과 함께 숨겨둔 무기를 안전한 곳으로 운반하였다. 이 밖에도 김좌진 장군의 부인 나혜국(羅惠國)과 함께 독립군의 식사와 의복을 관리하는 일도 하였다. 1930년 1월 김좌진이 흑룡강성(黑龍江省) 하이린시(海林市) 산시진(山市鎭)의 금성정미소에서 암살된 후에도 신민부에서 활동을 지속하였다. 나혜국과 신민부 동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였으며, 김좌진의 복수를 위해 고강산(高崗山)·김수산(金壽山) 등 6명이 하얼빈 주재 일본영사관 습격을 계획하자 직접 하얼빈까지 가 권총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0월, 일제 경찰이 석두하자의 자택을 습격하여 신민부 활동을 이유로 남편 유창덕, 동생 오해산(吳海山)과 함께 붙잡혔다. 모진 고문 끝에 징역 1년 6월을 받고 길림성 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유창덕과 오해산은 4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31년 만주사변 발발 직후 일본군에 의해 총살당하였으며 부친 오사언은 자결하였다. 이후 만주를 떠나 하얼빈·삼성(三姓)·베이징(北京) 등지를 전전하다가 1935년 안중근의 여동생 안성녀(安姓女)의 아들인 권헌(權憲)과 재혼하였다. 이후 인쇄소와 정미소를 운영하며 비밀리에 독립군에 군량미를 조달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서울 쌍림동에 터를 잡았으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에 피난하여 정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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