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응장
元應章188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통의부
- · 정의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2) 평안북도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의하면 1882년생으로 추정된다. 1920년대 상반기 남만주 환런현(桓仁縣)에 거주하며 통의부(統義府)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나섰다. 1923년경 통의부(統義府) 지방 조직인 환서총관(桓西總管) 검무감(檢務監)으로 활동하였다. 통의부는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에 의해 폐허가 된 남만주지역의 독립군기지와 한인사회를 재건하고 보다 효율적인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1922년 8월 성립된 통합 독립운동단체였다. 총장 김동삼(金東三) 지휘아래 민사·재무·학무·교섭·권업·군사·법무 등의 부서를 가진 중앙조직이 편성되고, 항일무장활동을 수행할 의용군이 조직되었다. 그리고 남만주 여러 지역에 형성된 한인사회를 관할하기 위한 지방조직이 만들어졌는데, 17개의 한인 단체가 통합된 통의부였기에 관할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통의부의 지방 조직 책임자인 총관은 약 1천호 정도 한인 가옥을 관리하였으며, 그 밑에 참사·서기·검무감·검무원·통신원 등의 직원이 있었다. 검무감은 부하인 검무원과 함께 담당 총관 내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의무금을 징수해 중앙에 보내는 업무, 한인들 간에 일어난 분쟁해결, 이주한인의 생계를 도모하기 위해 중앙에서 결정해 하달된 사항을 수행하는 업무 등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시 여겨진 검무감의 임무는 의무금 징수였다. 통합 독립운동 단체였던 통의부는 시간이 가면서 구성원 간에 이념과 노선의 갈등이 생겨 이탈자가 생겨났다. 1923년 초에는 복벽주의자(復辟主義者)들인 전덕원(全德元)·채상덕(蔡相德) 등이 의군부(義軍府)를 만들어 이탈하고, 1924년 상반기에는 항일무장활동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채찬(蔡燦, 이명 백광운(白狂雲))·김원상(金元常) 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部)를 성립시켜 나갔다. 이에 남아 있던 통의부 수호 세력은 또 다시 남만지역 통합운동을 벌여 1924년 11월 24일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켰다. 하얼빈-액목(額穆)-북간도를 선으로 이어 그 이남 만주를 관할지역으로 한 정의부 역시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을 구성하였다. 중앙에는 이주 한인의 삶을 이끌기 위한 3권 분립의 조직과 통의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독립전쟁을 담당할 의용군이 편성되었다. 통의부의 조직을 이어 받아 운영되던 지방 조직은 1925년 7월 10개 총관이 확정되어 새롭게 편성되었다. 확정된 지방조직은 해원(海原)지방·화인서구(華仁西區)·환인남구(桓仁南區)·경원(京原)지방·유하(柳河)지방·통화(通化)지방·관동(寬東)지방·무본(撫本)지방·백산(白山)지방·임장(臨長)지방총관 등이었다. 이중 환런현 마권자(馬圈子, 현 향양(响陽))에 사무소가 설치된 환인남구총관의 검무감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마권자는 특별한 목적 없이는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첩첩산골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독립군을 탄압하고자한 일제의 무력도 공략하기가 쉽지 않아 1922년 8월 17개 단체 대표들이 7일간이나 회의를 이어가며 통의부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첩첩산골이긴 했지만 정의부의 지방조직이 설치될 정도로 많은 한인들이 이곳에 거주하였다. 환인남구총관의 검무감으로 활동한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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