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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錫貞

錫貞

1892 ~ 192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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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錫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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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개성(開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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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동면(東面) 조문리(祚門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의용대(義勇隊) 대원으로서 활동하였다. 대한통의부는 일제의 재만(在滿)한인에 대한 만행인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시 입은 이주 한인과 독립군의 피해를 복구하고, 보다 활발하고 효율적인 항일무장활동을 펼치기 위해 성립된 통합 독립운동 단체였다. 1920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7개월 간 서북간도를 침략한 약 2만 명의 일본군으로 인해 이주 한인사회와 독립군기지는 인적·물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피폐화된 한인사회와 독립군기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한인의 모든 역량을 합일시켜야 할 것으로 판단한 독립운동계 지도자들은 통합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22년 8월 남만주지역의 통합 독립운동단체인 통의부(統義府)가 성립되었다. 김동삼(金東三)을 총장으로 한 통의부는 중앙 조직에 이주 한인의 피해를 복구하고 향후 생계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 행정 부서를 편성하였다. 그리고 항일무장활동을 수행할 의용군을 조직하였다. 의용군 사령관은 김창환(金昌煥)이었으며, 5개 중대와 유격중대·헌병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무렵 의용군 대원으로 참여하였다. 1924년 3월 4일 친일파로 악명 높은 봉천보민회(奉天保民會) 대리회장을 처단하고자 펑톈(奉天)으로 갔다. 재만(在滿) 한인사회를 친일화 시킬 목적으로 1920년 10월경 조직된 봉천보민회는 일제만큼이나 독립군이 척결해야 할 단체였다. 이 단체는 단순한 친일단체가 아니라 무장을 갖춘 첩보 밀정조직이었다. 독립군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여 일제에 넘기기도 했지만, 스스로 독립군을 상대로 무력 대결을 펼치기도 하였다. 봉천보민회의 우두머리를 처단하고자 펑톈까지 출동했으나 작전 수행 중 일제의 영사관 경찰대에 붙잡혔다. 이후 일제 경찰의 가혹한 고문을 받으며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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