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룡
金貴龍1898. 6. 25 ~ 1975. 11.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동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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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8년 6월 25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수안동(壽安洞, 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호는 백운(百雲)이다. 3·1운동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 현 동래고등학교) 4학년 졸업반에 재학 중이었다. 1919년 3월 7일 동래고보 학생 대표로서 동급생이던 김인호(金仁浩)·고영건(高永建)·엄진영(嚴進永) 등과 함께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들과 부산상업학교(釜山商業學校) 학생 대표들을 만나 독립선언서 등의 문건을 전달받았다. 3월 10일에는 동래고보 선배이자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동래고보 수학 교사 이환(李環)을 만나 만세 시위에 대해 상의하면서 계획적인 준비를 갖추었다. 이환은 교사 김병규(金秉圭)와 함께 학생들을 지원하여 시위 계획은 급진전하였다. 뜻을 같이하는 2·3학년까지 모아 만세 시위를 전개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동래면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로 거사 일을 정하였다. 3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고영건이 하숙하던 수안동 이한주(李漢周)의 집에서 학교 등사판을 이용하여 서진령·엄진영 등과 함께 500여 매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고, 고종 황제의 독살을 폭로하는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는 격문 수백 매를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 오후 2시 동래읍성 남문(동래경찰서 뒤쪽)에서 집결하는 제2대의 지휘를 맡아 동래읍성 남문에서 모여든 시위 학생과 함께 군중에게 인쇄물을 배포하면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지휘하였다. 학생·부녀자·장꾼 등 수천 명이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곧 일본군과 기마경찰이 출동하여 총칼로 진압하였고, 이때 붙잡혔다. 같은 해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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