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규
禹昇圭1903. 10. 3 ~ 1985. 8.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사료편찬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3년 10월 3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渼芹洞)에서 태어났다. 호는 나절로이다. 상하이(上海)에서 옆집에 사는 김두봉(金枓奉)의 『깁더 조선말본』 저술을 도왔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사료편찬회에서도 함께 활동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친하게 지내던 김두봉이 취미를 묻자, “장자크 루소의 자아주의와 자연주의를 신봉한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김두봉은 즉석에서 ‘자아’는 ‘나’요, ‘자연’은 ‘절로’이니 둘을 합쳐서 나절로라고 호를 지어줬다고 한다. 1919년 3월 유학을 목적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떠났다가 그 해 6월 상하이로 옮겨 훼이링전문학교(惠靈專門學校)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7월 2일부터 활동을 시작한 임시정부의 임시사료편찬회 조역(助役)으로 『한일관계사료집』 편찬에 참여하였다. 1923년 6월 선친이 사망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하여 국내에 머물렀으나 상하이에서 활동으로 인해 일제 경찰의 감시에 시달렸다. 그래서 고등계 형사들에게 맞서는 데는 신문기자가 되는 것이 첩경이라고 판단하고 신문사에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1932년 초 중앙일보사에 취직하였으나, 취재한 기사가 문제가 되어 총독부 경무국 도서과로부터 압력을 받아 파면되었다. 1933년 조선일보사에 취직하여 취재기자를 거쳐 편집기자가 되었다. 1938년 8월 상사와의 갈등으로 그만두고, 11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사로 옮겼다.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옮긴 것은 의외였다. 당시는 매일신보의 줄임말인 ‘매신’에 입사하는 것을 ‘매신(賣身)’한다고 비판하는 풍조가 있던 때였다. 1943년 매일신보사를 퇴사하고, 과수원을 운영하며 소일하였다. 광복 이후 조선통신사·대공일보사·조선일보사·한성일보사·경향신문사·시사신문사·서울신문사에서 편집국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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