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範圭
範圭1881. 3. 7 ~ 1949. 4.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1년 3월 7일 함경북도 명천군(明川)에서 태어났다. 다만, 다른 자료에 따르면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남양면(南陽面) 영원리(永遠里) 출신이라는 기록도 있다. 이명은 유홍구(劉洪九)·이성관(李成權)·이성관(李聖權)이다. 다섯 살 때 중국 옌지현(延吉縣)으로 이주하였고, 15살 때 회령공립보통학교를 다녔으며, 간도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그 후 서울로 돌아와 종로청년학관에서 수학한 후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2년 동안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이후 결혼하여 룽징(龍井)으로 건너가 사업을 벌였으나 실패하고 상하이(上海)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0년 9월과 1921년 9월 당시 ‘임시정부의 거류민’으로 파악되었다. 독립운동 자금 확보를 위해 프랑스조계에 건재(乾材)약방 홍범양행을 개설하였지만 여의치 못해 러시아 등지로 다니며 동지들과 연락하다가 귀국하였다. 하얼빈(哈爾濱)·베이징(北京)·상하이 등지를 왕래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 곤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1925년경 서울에 들어왔다. 안국동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일제 고관을 처단하고, 침략기관을 파괴할 무기를 구입하기 위한 군자금 모금 계획을 세웠다. 1927년 2월경 김성만(金成萬)·백순화(白順和)·현기봉(玄基鳳) 등과 임시정부의 공채증서를 인쇄하고 화폐를 위조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동시에 해외에서 무기를 공급받는 방법을 협의하였다. 그러나 폭탄과 권총 제조 시도가 실패하자, 1928년 5월 현기봉을 평남 개천(价川)에 파견하여 임시정부 활동 시 동지였던 김우천(金祐天)·장순봉(蔣舜鳳)·김련(金練) 등과 해외연락 루트를 밀의토록 하였다. 5월 27일 계획이 탐지되어 서울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임시정부 공채증권, 폭탄, 폭탄제조 원료약품, 조선은행권 인쇄기계·위조지폐 등이 발각되었다. 뒤이어 동지 현기봉·김우천·장순봉·김련 등도 개천(价川)에서 붙잡혔다.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예비죄, 지폐위조, 사기죄 등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1929년 4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함께 기소된 김성만은 징역 5년, 백순화는 징역 4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강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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