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봉
金奇鳳1894. 12. 9 ~ 1939. 1.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관련 사건
- · 단장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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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6) 1894년 12월 9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대성면(大城面, 현재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성흡(金性洽)이 있다. 1919년 당시 경남 밀양 표충사(表忠寺) 승려였다. 1919년 3월 초순 경남 밀양에 독립선언서가 유입되었고, 3월 13~14일과 4월 2일 밀양 학생들의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표충사 법무계(法務係)의 책임자인 이장옥(李章玉) 및 이찰수(李刹修)·오학성(吳學成)·손영식(孫永植)·구연운(具蓮紜)·오응석(吳應石) 등 동료들과 함께 서울의 만세 시위와 밀양 학생단의 거사를 계승하는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모임에서 4월 4일 단장면(丹場面) 태룡리(台龍里) 장날을 거사 일로 정하고, 이장옥은 법무계 서기인 김종석(金鍾碩)에게 선언서 수백 장을 등사하도록 하였다. 그 외 표충사 승려들과 함께 인근 사찰과 단장면, 산내면(山內面), 산외면(山外面) 등에 거사 준비 계획을 은밀히 전파하여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였다. 4월 4일 오전 11시경이 되자 장터에는 1,500여 명의 주민이 운집하였다. 표충사 승려들과 함께 면민들에게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배포하는 한편, 학생 장석준(張碩俊)은 제작한 종이 태극기 약 200개를 시위 참여자에게 배포하며 시위 준비에 나섰다.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개시하였다. 시위대는 종이 태극기를 흔들고 나팔을 불면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장을 일주하였다. 시위대 일부는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고, 일부는 태룡동 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시위 소식을 들은 밀양 주둔 일본 헌병대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였다. 시위대는 헌병주재소를 포위하고 투석전을 감행하였다. 저녁 무렵까지 지속한 만세 시위로 모두 370여 명이 검거되었고, 71명이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피신하였지만 시위 다음 날 검속을 나온 헌병에 검거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1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 명목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자 항소하였다. 12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오히려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곧바로 상고하였지만, 1920년 2월 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칙령 제120호에 의해 징역 1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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