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尙龍
安尙189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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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3)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석보면(石保面) 포산동(葡山洞) 출신이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24세인 것으로 보아 1895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세운동 당시 북장로파 포산동 교회의 집사서리(執事署理)를 맡고 있었다. 1919년 영덕군 영덕면 시장에서 만세운동은 영덕면 금호동 예수교 북장로파 교회 조사 강우근(姜佑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平洞) 예수교 북장로파 교회 조사 김세영(金世榮)이 1919년 3월 초 평양신학교로 유학 가는 길에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는 평양행을 포기하고 다시 영덕으로 돌아왔는데, 영덕에 돌아온 후 김세영은 같은 교회의 영수(領袖)인 김혁동(金爀東)에게 부탁하여 영덕면의 강우근을 찾아가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였다. 강우근은 김혁동의 제의에 적극 찬성하였고, 또한 전 구세군 참위(參尉)였던 영해면(盈海面)의 권태원(權泰源)과도 협의를 하여 영덕면에서도 3월 18일 장날을 맞이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위하여 강우근은 영덕면 소재의 화개동과 금호동, 남정면 교회 등지의 기독교인들을 설득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권유하였다. 영양군 석보면 포산동 북장로파 교회 신자 이승구(李承玖)가 3월 16일 박윤규(朴潤奎)에게 만세운동에 관한 소식을 듣고 3월 18일 영덕면 장날의 만세시위에 함께 참여할 것을 주변 신도들과 결의하여 만세운동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3월 17일 이승구는 김혁동·이명언(李明彦)·김태을(金太乙)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제의하였고, 이미 소문으로 들어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동의하여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다. 1919년 3월 18일 영덕면 시장에서는 강우근을 중심으로 결의한 영덕면·남정면(南亭面) 등지의 기독교인들과 이승구가 결집한 영양군 석보면 포산동의 기독교인들이 모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정오를 지나 점점 시장에 사람들이 많아지자, 낮 2시 30분 경 강우근은 시장 한가운데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함께 한 기독교인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찬동하여 시장 곳곳에서 군중들이 함께 만세를 부르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독립만세’를 외치는 소리에 일제 경찰들이 출동하여 시위에 참여한 군중을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하였다. 주도 인물인 강우근을 비롯하여 이승구·강대열(姜大烈) 등 20여 명이 체포되었고, 시위군중 또한 경찰들에게 강제로 해산되었다. 이때 시위를 주도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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