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환
安聖煥1888. 5. 28 ~ 1943. 6.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김포군 양촌면 양곡리 오라니 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88년 5월 28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양촌면(陽村面) 누산리(樓山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고, 1919년 3월 23일 김포군 양촌면 양곡리 오라니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해서 평양(平壤)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월 1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천도교·기독교·불교계 대표와 학생 대표들은 인편을 동원해서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국 각 지역으로 전파함으로써 전국적 확산을 추진하였다. 김포 일대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2일 월곶면(군하리 장터)과 검단면을 시작으로 3월 29일까지 양촌읍(陽村邑)·고촌면·하성면(霞城面)·월곶면(月串面) 일대에서 일어났다. 양촌면의 만세운동은 누산리 출신으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박충서(朴忠緖)가 서울 탑골공원의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돌아온 직후 계획되었다. 3월 19일 박충서는 박승만(朴勝萬)·박승각(朴勝珏)·정억만(鄭億萬)을 집으로 모아 회합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양촌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고, 만세시위에 사용할 격문과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경고문을 작성하고 양촌면 일대에 배포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양촌면의 만세시위 거사일을 장날인 3월 23일로 결정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2시, 박충서 등 주도자들은 양촌면 오라니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날 장터에 나와 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수백 명의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이에 일제 군경은 오라니 장터에서 열린 만세시위의 무력 진압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오라니 장터에서는 또 다른 이들에 의해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대곶면(大串面) 초원지리(草元芝里)에 거주하는 서당 교사 정인섭(丁寅燮)과 박철복(朴哲撲)도 3월 23일 오라니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그들은 광목으로 태극기를 만들었으며, 정인섭은 ‘독립만세’라고 적힌 깃발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3월 23일 오후 4시 경, 정인섭이 군중 약 300명이 모인 자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정인섭과 박철복이 이끄는 시위대는 만세를 외치며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일제 군경은 시위대의 해산을 요구하였지만, 시위대가 이에 응하지 않자 정인섭 등을 붙잡아 시위를 해산시켰다. 3월 23일 양촌 오라니 장터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군경에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며, 같은 해 6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이 파기되고,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