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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원

安順元

1886. 3. 17 ~ 1950.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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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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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水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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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수원군 송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6년 3월 17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3월 26일과 28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고종(高宗)의 국장(國葬)에 참여한 후 격문을 구해서 사강리로 돌아 온 홍효선(洪孝善)과 『매일신보』 등의 언론을 통하여 소식을 보고 있던 홍면옥(洪冕玉) 등이 중심이 되어 송산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자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3월 26일은 세금을 납부하는 날로 마을 구장(區長)인 홍명선(洪明善)의 집에 갔다가 주민 120여 명과 함께 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후 5시 무렵 주민들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부근으로 이동하여 태극기를 내걸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틀 후인 3월 28일, 주민들과 함께 사강리의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한 번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일제 경찰은 시장에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어 만세운동을 벌인 것을 예상하고, 모든 가게의 문을 닫도록 지시하는 등 이를 막아보려 하였다. 당일 오전 10시 무렵 사강리 장터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11시 무렵에는 홍면옥의 집에서 홍효선·김창준(金昌俊)·왕광연·홍태준·홍문선(洪文善) 등이 모여 따로 만세를 외치기도 하였다. 오후가 되자 만세시위 참여한 주민들이 송산면사무소 부근에 집결하였다. 송산면사무소 부근에 모인 1천여 명의 군중은 약 2척 5촌에서 3척 가량의 백포(白布)에 염색하여 만든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대규모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운동을 벌이자 출동한 일제 경찰 노구치 고조(野口廣三) 순사부장은 주민들을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에 노구치는 만세시위 주도자로 보이는 홍면옥·이규선(李奎善)·예종구(芮鍾九) 등을 잡아 사태를 진정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홍면옥이 이에 불응하고 일어나 저항하자, 총을 쏘아 등에 총상을 입었다. 이에 격분한 시위대는 순사부장에게 격렬히 항의하였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위협을 느낀 순사부장은 자전거를 타고 남양(南陽)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그러나 홍면옥을 죽이고 도주한다고 생각한 시위대가 순사부장에게 돌을 던지며 추격하였고, 결국 붙잡아 처단하였다. 이 일로 1919년 5월 9일경 붙잡혔고,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보안법 위반죄, 살인죄 등으로 징역 6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원심이 그대로 인정되어, 징역 6년(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4년 1월 26일 이른바 칙령(勅令) 제10호에 의거, 징역 4년 7월 20일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영진(한역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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