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택언
吳澤彦1897. 6. 17 ~ 1970. 2.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서울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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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6월 17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하북면(下北面) 지산리(芝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중앙학림(中央學林, 현 동국대학교)의 생도였다. 중앙학림은 1915년 11월 개교한 불교계의 고등교육기관이며, 만세운동을 기점으로 불교계 민족운동의 거점으로 떠오른 곳이다. 만세운동의 초기 확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2월 28일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한용운(韓龍雲)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배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이를 수락하고, 독립선언서 약 3천 장을 시민들에게 배포하였다. 다음날인 3월 1일 탑동(塔洞)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후 군중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같은 날 밤에도 동료 학생들과 함께 서울 청진동과 주변 민가에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면서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3월 7일 일제 군경이 주도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동료 학생들과 함께 붙잡혔다.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이 적용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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