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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현

禹輔鉉

1862. 10. 2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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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우보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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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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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양주군 미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62년 10월 21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理, 현 남양주시 평내동)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3일과 3월 14일에 궐기한 평내리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선언문 발표와 서울에서의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자 일제는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의 명의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므로 일본이 한국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으니 유언비어에 속지 말라”는 내용의 고유문(告諭文)을 작성하여 마을 단위로 배포하고, 구장(區長)들에게 마을 주민을 상대로 낭독하게 하였다. 평내리의 구장으로, 서울에서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해들은 이승익(李昇翼)은 고유문 낭독을 이유로 3월 13일 밤 주막 앞에 평내리 주민을 소집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였는데, 이석준(李錫俊)·정기섭(丁基燮)·김영하(金永夏) 등과 함께 야유하며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이에 주막에 모인 100여 명의 평내리 주민들과 뜻을 같이하여 만세를 외치기로 결의하고, 동리를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다음날인 3월 14일에도 이승익·김영하와 함께 만세운동을 계속하기로 하고, 이석준과 함께 선두에서 주민 100여 명을 인솔하여 금곡리(金谷里, 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미금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만세운동의 참가자들은 행진을 목격한 일본인들의 밀고로 인해 일제 경찰들에게 붙잡혀서 주재소로 압송당했는데, 이때 만세운동의 주도자로 지목되어 형사재판에 념겨졌다.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대신 형법을 적용하여 동일하게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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