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정
禹泗鼎1891. 10. 19 ~ 1953. 7.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청양군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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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91년 10월 19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지곡리(池谷里)에서 태어났다. 우사승(禹泗昇)이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청양군 정산면(定山面) 정산시장(定山市場)과 권흥규의 운구행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산면의 독립만세운동은 이 지역의 유림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정산면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은 서울의 만세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정산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정산시장의 장날인 1919년 4월 5일을 거사일로 잡아 아침 일찍 홍범섭의 자택에 모여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준비를 하고, 이날 오후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에 나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운동에 동참하라는 이들의 호소에 공감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며 만세시위대열에 합류하였다. 정산장터의 곳곳을 활보하며 시위를 전개하던 도중, 일제 헌병의 발포로 시위대를 이끌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가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이날의 정산시장 만세시위는 해산되었다. 하지만 정산의 만세시위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 일찍부터 권흥규의 친인척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시신인수를 위해 헌병주재소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운구행렬을 조직하여 선두에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을 세우고, 고인의 자택이 소재한 목면 안심리(安心里)로 향했다. 전날의 만세시위에 이어 운구가 지곡리를 지나갈 때를 기다려 조종두(趙鍾斗)·조종진(趙鍾振) 등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운구에 동참하였다. 운구가 지나는 곳마다 주민들이 속속 참여하였다. 운구행렬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었고, ‘독립만세’라고 쓰인 깃발과 태극기가 나눠지기 시작하면서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연창되었다. 운구행렬 속에서 나눠받은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에 일제는 만세시위대로 전환된 운구행렬을 해산시키기 위해 정산의 헌병과 함께 공주(公州)의 헌병까지 증원하여 현장으로 급파하였다. 운구행렬에 대한 이들의 무차별 발포로 또다시 최윤안(崔胤安)·김국삼(金國三) 등 여러 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일제 헌병들의 검거과정에서 4월 5~6일의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혐의로 붙잡혀서 청양헌병분견소에 구금되었다. 1919년 4월 22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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