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후
魏啓厚1884. 11. 15 ~ 1944. 6. 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영남청년회
- · 영광체육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4년 11월 15일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樺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흥(長興)이고, 호는 해인(海人)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송진우(宋鎭禹)의 외조카이다. 유년시절 송진우와 창평학숙(昌平學塾)에서 함께 한학을 수학하였다. 둘은 친밀하게 교류하며 국가 존망의 위기 속에서 기울어져 가는 조국의 미래에 관하여 걱정하였다. 이후 광주농업학교에 입학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으며, 1913년 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영광에 거주하면서 시인 조운(曺雲)의 누이인 조영정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영광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주의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1915년 10월 5일 영광읍교회(현 영광대교회)의 조사(助事)직을 맡아 시무하였다. 평소 애족심이 강하였으며 무력을 앞세워 국권을 강탈한 일제에 대하여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민족 독립의 기회를 엿보면서 지역민들의 계몽 사업에 진력하였다. 1916년 3월 영광청년회(靈光靑年會)를 조직하여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왜화배척·문맹퇴치·자립경제의 슬로건을 내건 3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탑골공원으로 가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만세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송진우에게 연락해서 서울에 유학중인 조철현(曺喆鉉)의 편에 독립선언서를 영광지역으로 보내주기를 요청하였다. 3월 3일 조철현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에 도착하자 영광공립보통학교 교사 이병영(李炳英)과 학생 정헌모(鄭憲模)·허봉(許奉)·조술현(曺述鉉)과 비밀리에 모여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였다. 거사 일을 3월 14일로 정하고 만세시위를 대대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영광공립보통학교 학생 120여 명은 대열을 갖춰 행진하면서 애국가를 제창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시위대는 학교를 출발하여 도동리(道東里)를 돌아 영광경찰서로 나아가는 동안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이것을 목격한 주민들이 시위대의 대열에 합류함에 따라 세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출동한 헌병 경찰은 정미소 앞에서 시위대와 대치하면서 그들에게 즉시 해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시위대가 두려움에 떨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면서 ‘독립만세’를 제창하자, 헌병대는 강압적으로 학생들을 검거하였고 결국 시위대는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영광 만세시위의 책임자로 지목되어 교사직에서 강제 해임 당하였다. 이후에도 일제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1923년에 영광학원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의 맥이 단절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주민들과 함께 노력하여 영광학원은 정규 학교인 영광중학교로 발전되기도 하였다. 일제는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간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결사·집회의 자유를 박탈하였다. 그리고 국내에서 각종 사회운동을 주도해 온 청년회 및 농민회를 모두 강제 해산하였다. 어떤 형태로든지 민족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1934년 4월 조규원·조운 등과 함께 영광체육단(靈光體育團)이라는 지역단체를 결성하였다. 이 체육단의 활동은 체력향상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영광·장성(長城)·고창(高敞)·정읍(井邑) 등 4개 군을 묶어서 순차적으로 연합운동회를 개최할 계획을 세웠다. 1935년 4월 제1회 연합운동회를 영광에서 개최하여 체력 단련과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회를 통해 배일사상이 확산될 것이라고 판단한 일제 경찰은 영광체육단을 해산시키고 평소 자신들의 정책에 비협조적인 영광의 지도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옥사 사건을 날조하였다. 그리고 범인 색출을 구실로 수백 명을 잡아들였는데,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미결상태로 1년 4개월간 옥고를 겪다가 193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면소 처분을 받아 풀려났으나, 그 해 3월 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벌금 20원, 노역장 유치 20일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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