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필
金德弼1882. 7. 4 ~ 1947. 4.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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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82년 7월 4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장성리(長城里)에서 출생하였다. 덕필(德必), 덕선(德宣) 등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금마면의 만세 시위는 가산리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이 주도하였다. 3월 1일 이후 전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자극을 받은 민영갑은 먼저 이재만과 협의하여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동참하면서 계획이 구체화되었다. 당시 가산리에서는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임시 연극 공연장을 설치하여 4월 1일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들의 계획은 이 공연에 다수의 사람들이 관람하러 오는 것을 기회로 만세 시위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예정대로 4월 1일 연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연극을 관람하다가 공연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경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다른 관객 수십 명과 함께 곧바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연극 공연장은 만세 시위장으로 변하였다. 이날 시위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당일 해산되었으나, 다음 날 홍성시장의 만세 시위로 이어졌다. 가산리 연극 공연장 만세 시위의 중심 인물인 민영갑·이재만 등과 함께 4월 2일 홍성시장으로 나가 전날에 이어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장에 나온 많은 수의 군중이 참여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시위 규모는 불어났고, 이들은 홍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날의 시위에서 적극적으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4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처분에서 90도의 태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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