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석
安龍碩미상 ~ 1921. 2. 2
관련 단체
- · 대한광복군사령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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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2)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만주 지역에서 대한광복군사령부 대원으로 활동하며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발발한 후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설정하고, 군무부 직할 서간도 지방사령부로 대한광복군사령부(大韓光復軍司令部)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군수기관으로 대한광복군참리부(大韓光復軍參理部)를 조직하였다. 나아가 이에 앞서 중국 지린성(吉林省) 안둥현(安東縣)에서는 7월 이후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摠營)이 조직되었는데, 이 대한광복군총영은 1920년 3월 경 안둥현에서 조직된 광복단(光復團)을 주축으로 결성되었으며, 이후 이 조직이 실질적인 지방사령부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때 대한광복군사령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12월경, 광복군사령부 제2영(營) 함찬(咸燦)을 비롯한 3인과 더불어 평남 지역에서 활동하다 1921년 1월 청년단 부단장 백학원(白學元)을 만났고, 이후 압록강을 건너 만주 랴오닝성(遼寧省) 안둥현의 구련성(九連城) 상류 압록강 연안에서 일제 경찰과 교전하였다. 이 때 백학원이 총상을 입자 삼도만(三道灣) 위자구(葦子溝)의 중국인 민가로 피신하였고, 함찬은 광복군사령부 본부에 연락하여 군의(軍醫) 이명하(李命夏)가 급파되었다. 당시 제2영 대원 정인복(鄭仁福)과 더불어 보호위문차 동행하였다. 이를 탐지한 일제 경찰은 안둥현에서 7명, 의주(義州)에서 21명이 합세하여 2월 2일 중국 관헌의 교섭 없이 대원들이 머문 민가를 급습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 경부 1명을 처단하고 형사 1명에 중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렸으나, 일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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