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안순구

安順九

1881. 4. 1 ~ 1908. 8. 1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안순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정읍(井邑)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정읍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후기의병(전북 고창)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81년 4월 1일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입암면(笠岩面) 신정리(新井里; 현 정읍시 신정동)에서 태어났다. 1908년 전라북도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를 일제가 강제 해산시켰던 것을 계기로 의병투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항일투쟁의 규모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참가 의병의 계층 또한 다양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호남지역 의병은 여타 지역보다 더욱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하였다. 일본군은 이러한 의병투쟁에 대해 러일전쟁 이후 전력의 정비를 방해하고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저지할 뿐 아니라, 제국 군대로서의 위신에 손상이 가해진다고 판단하였다. 그에 따라 실시한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에서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10월 5일까지 의병 1,055명을 잡아들이고, 374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초토화전술을 기본으로 삼아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수색, 검거를 집중적, 반복적으로 광범위하게 실시한 결과였다. 『조선폭도토벌지』에서는 1906년 3월부터 1911년 6월까지 의병부대 피해로 1만 7,779명 사망, 376명 부상, 2,139명의 포로가 발생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시기 흥덕군(興德郡; 현 고창군 흥덕면), 고부군(古阜郡; 현 정읍시 일원)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28세였던 1908년 8월 15일 오후 10시 흥덕군 일남면(一南面) 월화촌(月化村)에서 순사에 의해 붙잡힌 후 압송되던 도중 탈출을 시도하다가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봉규⋮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