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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대호

玉大鎬

1925. 9. 19 ~ 2008.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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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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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광주사범학교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광주사범학교 무등독서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925년 9월 19일 전라남도(全羅南道) 무안(務安)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광주사범학교(光州師範學校) 재학 중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라는 비밀결사를 참여하여 항일투쟁에 참여하였다. 어렸을 때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언론에 글과 그림, 표어 등을 다수 기고하였다. 1937년 12월 12일 『동아일보』 어린이(日曜)란에 당시 13세, 함평공립보통학교 3학년으로 "도화(圖畵)"라는 제목의 그림을 실었다. 또한 2년 후인 1939년 11월 5일에도 15세 나이로 『동아일보』 아동부(兒童部)에 표어를 공모하여 2등을 수상, 5원의 상금을 받았다. 소년기 당시 체제 순응적인 모습으로 보였지만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변화하였다. 1943년 3월, 광주사범학교 3학년에 재학 중 안동영(安東永)·조규학(趙圭學)·김상중(金尙中) 등과 함께 무등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무등독서회는 광주사범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비밀결사로 시국 현안과 독립운동에 대해 논의하는 사모임이었다. 이들은 네 가지의 행동 강령을 가지고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무등독서회 회원들은 매월 두 차례에 걸친 독서모임을 통해 민족사를 탐구하였다. 독서모임에서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식민사관에 대항하는 역사관 확립에 노력하였다. 또한 국제 정세를 공유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를 인지하였고, 이후 임시정부와 연락하여 비밀 명령을 수행할 계획을 논의하였다. 나아가 연합군이 한국에 한국에 상륙할 경우, 이에 호응하여 봉기하는 연합군 지원방안을 모색하면서 독립운동을 구체화시켰다. 이런 가운데 독서회 결성 이후 "일본은 물러가라"는 삐라와 벽보를 광주 금남로 일대와 일본인의 집 곳곳에 부착하는 등 투쟁을 실행하였다. 1943년 4월에는 임시정부 연락정보원과 접촉하여 국제 정세와 임시정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도 하였으며 태극기를 제작하여 회원끼리 나누어 가졌다. 1943년 5월에는 광주사범학교의 혹독한 군사 훈련에 대해 전 학년 구보 데모로 저항하며 학내에서도 조직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44년 10월, 조직 확대에 힘쓰던 중 회원 한 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조직은 물론, 준비하고 있던 여러 거사 계획도 발각되었다. 결국 1945년 3월에 붙잡혀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광복이 될 때까지 재판 없이 6개월간 옥살이를 하였다. 광복 후 광주사범학교에 복학하여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무안중학교와 목포중학교 등에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무안일로여자중학교에서 정년 퇴직하였다. 퇴직 당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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