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왕광연

王光演

1872. 10. 26 ~ 1951. 12. 2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왕광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수원(水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독립장(1977)

관련 사건

  • · 수원군 송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77) 1872년 (음)10월 26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 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개성(開城)이고, 이명은 왕국신(王國臣)이다. 자료의 한계로 집안 가문과 성장 배경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매우 빈한하여 다른 사람의 밭을 소작하여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1919년 3월 26일과 28일 2차례 전개되었던 송산면 사강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홍면옥(洪冕玉, 이명 홍면), 홍준옥(洪㻐玉, 송산면사무소 서기) 형제 및 문상익(文相翊, 송산면사무소 서기) 등과 함께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를 처단하였다. 1919년 3월 26일 오전 김진홍(金鎭鴻)의 집에 방문했다가 정오가 지난 무렵 귀가한 후, 세금을 내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홍효선(洪孝善)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때 송산면 사강리 구장 홍명선(洪明善)의 집에 호세 납부를 위해 120여 명의 주민이 모였는데, 이 자리에 함께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장(國葬)에 참여했다가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한 홍효선이 지역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을 함께 할 것을 제창하였다. 이에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여 송산면 사강리의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같은 날 오후 5시 홍면옥·홍효선·이규선(李奎善) 등이 이들을 이끌고 사강리 소재 송산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이곳에서 15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앞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저녁 11시까지 송산면과 서신면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오전 11시 홍면옥, 홍효선, 홍명선 등과 재차 결의하고 문상익, 민용운(閔龍雲)·박춘흥(朴春興)·오광득(吳光得)·이경집(李敬集)·전도선(全道善)·홍관후(洪寬厚)·홍남후(洪南厚)·홍문선(洪文善)·홍승한(洪承漢)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같은 날 오후 2시 약 1,000명 이상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인근에 모여 태극기 2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28일은 사강시장 장날로 마도면(麻道面)·서신면(西新面)·송산면·수원면(水原面, 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일대)·음덕면(陰德面, 현 화성시 남양읍)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만세시위의 규모가 커지자 이를 막기 위해 수원경찰서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와 남양주재소 소속 순사 다케우치(竹內), 순사보(巡査補) 김학응(金學應)·조종환(趙鍾桓)·정(鄭)모 등이 현장에 출동하였다. 그러나 순사부장 노구치의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의 열기는 더해 갔다. 시위가 진정되지 않자 노구치는 오후 3시 주도자로 보이는 홍면옥·홍효선·예종구(芮鍾九, 芮鍾具)를 붙잡아 앉히고 순사보 김학응으로 하여금 이들을 지키게 하였다. 동시에 권총으로 군중들을 위협하며 시위를 진압하고자 하였다. 이때 갑자기 홍면옥이 일어나 만세를 부르며 김학응의 멱살을 잡고 저항하였다. 이를 본 노구치가 제재하려고 하자 홍면옥이 그에게 달려드는 순간 노구치는 홍면옥을 향해 권총을 발사해 그의 어깨 부위를 맞혔다. 총소리로 시위가 잠시 주춤해 진 사이 홍면옥의 동생 홍준옥이 달려와 “형이 총에 맞았는데 보고만 있을 것인가? 총을 쏜 순사를 잡아 죽여달라”며 절규하고, 홍면옥 역시 일본 순사를 죽여달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홍준옥은 홍면옥을 송산면사무소로 옮겨 응급 조치를 하며 총을 쏜 일본인 순사를 죽여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홍준옥과 같이 송산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하던 문상익이 이를 보고 격분하여 “사람을 죽인 순사를 처단하자”며 나서자, 뒤를 이어 “순사를 처단하자”고 부르짖으며 시위대를 이끌었다. 상황히 급박히 전개되자 순사부장 노구치와 순사 다케우치는 자전거를 타고 남양주재소를 향해 도주하였다. 그러자 홍준옥, 문상익과 함께 주도적으로 이들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김명제(金命濟, 홍면옥의 장인)·김용준·민용운(閔用云)·이윤식(李潤植)·정군필(鄭君弼)·홍남후(洪南厚)·홍명선·홍문선·황칠성(黃七星)·홍관후 등 약 20여 명도 함께 뒤따랐다. 사강리 시장 길 동쪽 끝 사강경찰관 주재소 인근에서 따라잡아 누군가 노구치의 자전거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노구치가 쓰러지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들어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구타했다. 그리고 뒤따르던 동지들도 합세하여 그를 처단하였다. 3월 29일 홍면옥·홍준옥·김명제·문상익 등과 함께 붙잡혀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살인죄로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했으나 같은 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경성형무소로 이감되어 수감 중 1924년 8년 10개월로 감형되어 1927년 12월 23일 오전 10시 홍면옥·문상익과 함께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