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순
安泰純187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노인동맹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대한국노인동맹단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두나면(斗羅面) 청계동(淸溪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8세인 것으로 보아 1872년생으로 추정된다. 황해도 해주에서 진해현감을 지낸 안인수(安仁壽)의 6남 3녀 중 6남으로 태어났다. 안중근(安重根)과 안명근(安明根)의 숙부이다. 이른바 ‘안악사건’으로 안명근이 체포된 후 가족 전체가 중국 만주 지린성(吉林省)으로 망명하였다. 1913년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신한촌에서 설립된 노인회가 1919년 만세운동 이후인 3월 26일 무장독립단체에 보낼 자금 모금과 동지 규합을 목적으로 대한국노인동맹단으로 개칭되자 이에 가담하였다. 노인동맹단이 “청년자제들이 독립을 위해 피를 뿌리는데 우리 노인들이 어지 가만히 있겠느냐! 구차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영예로운 죽음을 택할 것이다”는 취지의 선언서를 발표하자,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수천 명이 노인동맹단과 행동을 같이할 것을 서약하였다. 같은 해 5월 20일 이동휘(李東輝)의 부친인 이발(李撥) 등 6명과 함께 노인동맹단으로부터 각자 여비 500~700루블을 받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여 기차로 압록강 대안 안둥(安東)으로 갔다. 그곳에서 2명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가고, 5명은 국경을 넘어 신의주(新義州)를 경유하여 5월 31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발·정치윤(鄭致允)·윤여옥(尹餘玉)·차대유(車大輶) 등과 함께 종로 보신각 앞에서 독립의 취지를 설명하고 군중들에게 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경찰이 체포하려 들자 대노한 이발은 왜놈에게 욕을 당할 수 없다며 칼을 빼들어 스스로 목을 베었다. 이후 정치윤은 연로하고 병약하다 하여 러시아로 되돌려 보내졌다. 1919년 7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4월 28일 거행된 왕세자 이은의 결혼식으로 내려진 은사령으로 풀려나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지린성(吉林省) 목릉현(穆稜縣)으로 돌아갔다. ‘경신참변’이 일어나던 1920년 말에 형인 안태건(安泰健)과 함께 일본군에게 붙잡혀 하얼빈(哈爾賓)으로 끌려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났다. 자료의 한계로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상원⋮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