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六萬
安萬1900. 10. 20 ~ 1980. 1.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진위군 청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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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0년 10월 20일 경기도 진위군(振威郡, 현 평택) 오성면(梧城面) 안화리(安化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안융만(安隆萬)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진위군 청북면(淸北面) 백봉리(栢峯里)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자 그 취지에 공감하여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1919년 4월 1일 김원근(金元根)과 함께 진위군 청북면 백봉리로 이동하여 동리 주민들에게 “무슨 까닭으로 독립만세를 부르지 않는가? 빨리 나와서 부르라”라고 큰 소리로 만세운동 참여를 호소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최만화(崔晩華)·안희문(安喜文)·황순태(黃順泰)·정수만(鄭水萬)·홍기성(洪奇成)을 비롯한 백봉리 주민 수십 명이 합류하여 다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만세운동 이후 김원근·최만화·안희문·황순태·정수만·홍기성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와 인도에 근거한 의사 발동으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1심 및 2심의 유죄 판결은 부당하면 복종할 수 없는 위법”이라며 상고하였으나, 그해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수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8개월 후인 1920년 4월 28일 사면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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