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원
安在遠1891. 9. 25 ~ 1961. 7.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함안군 함안 읍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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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9월 25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여항면(艅航面) 외암리(外岩里)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희옥(希玉), 호(號)는 죽암(竹巖)이다. 이명으로 안교수(安敎壽)를 사용하였다. 10살 터울의 큰 형인 안재형(安在瑩)은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이 이루어지자 자결을 시도하였을 정도로 민족의식이 높았다. 사촌 안재휘(安在輝)는 함안 지역 만세운동의 계기가 되는 고종 국상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이들의 영향을 받아 함안군 읍내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9일 함안군 봉성동(鳳城洞)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태평루(太平樓)에 대형 태극기가 걸렸고, 동명학교(東明學校) 교사 이희석(李喜錫)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모여 있던 수백 명의 시위군중이 일제히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시위가 진행되면서 군중은 3천여 명으로 늘어났고, 시위대는 함안 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였다. 경찰이 진압에 나서자 시위대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였다. 이들은 몽둥이를 지참하고 주재소를 습격하는 한편, 투석전으로 건물을 파손시켰다. 그리고 이어서 함안군청, 등기소, 우체국, 일본인 소학교 등 일제 식민지배 관련 기관들을 차례로 점령하고 시설물을 파괴하였다. 이 때 시위대를 이끌며 투석전을 전개하고 주재소, 군청 습격의 선두에 섰다. 시위가 격렬해지고 주요 관공서가 습격당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일본군 중포병대대 병력이 출동하여 경찰과 합세하여 시위진압에 나섰고, 주도자 체포를 진행하였다. 결국 이 때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재판에 넘겨진 63명에 포함되어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1심 판결을 받았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8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고향을 떠났다. 1961년 7월 6일 일본에서 사망하였다. 고향인 외암리에 추모비와 묘갈(墓碣)이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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