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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수

安炳秀

1927. 2. 17 ~ 1978.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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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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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醴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예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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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7)

관련 사건

  • · 학생(대구사범학교) 일왕사진소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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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7) 1927년 2월 17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풍양면(豐壤面) 흔효리(欣孝里) 출신이다. 일제의 강요로 안전병수(安田炳秀)라는 창씨명을 사용하였다.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 재학 중 전시 파시즘 시국에서 신격화되었던 제국 일본 천황의 사진을 불태우는 등의 항일 활동을 펼쳤다. 1931년 이른바 ‘9.18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 이후 1941년 미국과의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며 전시 파시즘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 한반도를 이른바 ‘총후’의 사회이자 ‘정신총동원’의 사회로 재편하고자 하였다. 전세가 점차 일본에 불리해지자 오히려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노골적인 억압 자행되었고, 식민지 한국인 학생들과 민중들은 친일·우민화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패배와 한국의 독립을 앞당길 방법에 대해 논의하거나 일상에서도 ‘유언비어’나 낙서, 노래가사를 만들어 자신의 불만과 일제에 대한 저항감을 표출하고자 하였다. 1941년 12월 17일 15세인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 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2학년 시절에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에 게재된 당시 일제의 신격화의 대상이었던 제국 일본의 천황사진을 ‘죽도파편(竹刀破片)’에 불을 붙여 태우는 등의 일상적인 저항 운동을 전개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1942년 1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불경죄(不敬罪)’로 징역 3년의 중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3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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