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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채

安鳳彩

1901. 11. 14 ~ 1977.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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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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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康津)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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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11월 14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군동면(郡東面) 금사리(金沙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만세운동 1주년 기념 시위에 참가하였고 1920년대 농촌의 노동문제와 소작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1931년 11월 강진읍(康津邑) 소작농민대회와 소작쟁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 이후에 민족, 사회운동과 계몽활동이 식민지 한국에 활발하게 일어났고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자 식민지의 열악한 경제 상황 속에서 억압받던 한국인들 사이에서 혁명적 노동운동과 소작쟁의가 활발히 일어나게 되었다. 특히 1920년대 이래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일본인 및 조선인 상층 대지주에 의한 소작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던 전남의 농촌 지역에서 소작쟁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일제는 이러한 급진적 소작운동을 ‘검거 선풍’으로 무마하려 하였다. 1920년 강진보통학교(康津普通學校) 재학 중에 만세운동 1주년기념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경찰에 붙잡혀서 수일간 구금당하였다고 한다. 1923년 강진군 군동면 진명청년회(進明靑年會)와 소작공제회에서 음력 정초(正初)에 순회강연단을 함께 조직하고 같은 달 16일에 강연회를 개최하여 여성과 노동자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교육의 급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기도 하였다. 1931년 11월 초 대공황의 영향으로 과중해진 소작료 문제에 관한 소작인들의 불만을 수렴하기 위한 토의를 시작하였다. 이후 같은 달 16일 강진읍 내 소작농민대회를 열고 장명환(張明煥) 등 6명과 함께 소작료 감액운동 집행위원에 선정되었다. 강진읍내에 있는 지주를 상대로 하여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는 동시에 전남도 당국에 해당 요구사항과 그 사유를 진정(陳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자 11월 28일 오후 4시반에 소작쟁의원 200여 명과 함께 겸전산업주식회사(鎌田産業株式會社) 목포지점 강진출장소에 쇄도하였다. 이들은 회사를 포위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대지주인 김충식(金忠植) 등에게 소작료 2할 감액을 요구하다가 출장소 사무원 후쿠이에이치타로(福家一太郞)·나카시게루 료이치(中繁良一), 강윤동(姜允東) 3인을 구타하였다. 이로 인해 경찰에게 조정구(趙政九) 등 10여 명이 붙잡히자, 소작쟁의원 500여 명이 같은 날 저녁 11시에 곤봉을 들고 결창서로 쇄도하여 체포된 소작쟁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시금 항의하였다. 그러자 70여 명이 추가적으로 붙잡혔고 이 중 장명환·조정구·마성만(馬成萬) 등 15명과 함께 기소되었다. 1932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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