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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時昇

時昇

1923. 1. 3 ~ 1989.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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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時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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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조선회복연구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안동농림학교 항일비밀결사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923년 1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풍남면(豊南面) 하회리(河回洞)에서 부친 유준우(柳濬佑)와 모친 안동 김씨(安東 金氏) 사이에서 3남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큰 아버지 유인우(柳仁佑)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후손이며, 1896년 안동의병의 지휘장(指揮將)을 지낸 석호(石湖) 유도성(柳道性)이 종조부이다. 여강 이씨(驪江 李氏)와 결혼하여 슬하에 3남을 두었다. 1936년 4월에 안동공립농림학교(安東公立農林學校)에 입학하여 1941년 3월에 졸업하고 이 학교의 교유(敎諭)가 되었다. 안동농림학교 교유로 재직하던 중, 항일 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에 참여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1944년 10월에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연합군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어 일제의 패전이 확실하므로 일본군으로 끌려가 헛된 죽음을 당하기 전에 대책을 함께 마련하고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결성된 비밀결사였다. 학생들이 비밀결사의 결성과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여 지도받기를 청하자 승낙하였다.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제가 한인 청년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수업 연한을 단축시켜 활동을 주도하는 많은 학생들이 졸업을 해야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럴 경우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무장봉기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일제 관공서를 파괴하여 후방을 교란하고, 연합군의 국내 상륙을 지원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독립운동의 방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낙동강 철교, 인도교 교각을 폭파하는 계획을 논의하고 훈련하였다. 또한 1945년 2월 일제 패망과 봉기를 선동하는 벽보를 붙이고, 거사가 성공할 경우 인근 의성(義城)으로 진출하여 대구(大邱)에서 출동하는 일본군 제24부대와 결전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그동안 비밀리에 교류하던 안동농림학교와 경주중학교 학생들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 명성회(明星會)와 연합하여 무장투쟁을 실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거사를 추진하던 중 조선회복연구단의 단원들이 주고받은 편지 때문에 일부 단원이 붙잡혀 계획을 연기하였다. 다시 논의하여 일제의 육군 기념일인 1945년 3월 10일에 여러 행사로 일본군의 경비가 허술할 것으로 보고 이날 거사를 단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먼저 붙잡힌 단원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단원 명단을 포함한 조직의 전모와 거사 계획이 발각되어 3월 12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대구농과대학(大邱農科大學)에서 강의하였으며, 1952년 안동농림고등학교 교감, 영주농업고등학교·예천농업고등학교·대구농림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1979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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