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淵建
淵建1892. 1. 9 ~ 1953. 3.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노동공제회
- · 화성회
- · 길안청년회
- · 신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3) 1892년 1월 9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고천동(高川洞)에서 아버지 유광호(柳廣鎬)의 4남 4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극(士極), 호는 혁암(革菴), 이명은 일도(一島)이다. 진성 이씨(眞城 李氏)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1915년 6월 서울에서 이강래(李康來)·이승호(李承鎬)·김정빈(金正彬)·남정호(南廷鎬)·신언학(申彦學)·이승직(李承稷) 등과 함께 국권회복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고종(高宗)이 중국의 마젠창(馬建忠)에게 빌려준 은(銀) 26만 냥을 양도받아 운동자금으로 활용하고, 중국 간도에 비밀결사 건북유한공사(建北有韓公司)를 설립하여 국권회복의 기초를 구축하기로 계획하였다. 나아가 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강화회의가 열릴 때 중화민국 총통 위안스카이(遠世凱)를 통해 한국 독립을 제의하여 국권을 회복하기로 결의하였다. 계획에 따라 고종과 의친왕(義親王) 명의의 위조 도장을 만들어 작성한 성명서·위임장·유시문을 가지고 지방에서 동지를 규합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 활동으로 붙잡혀 1916년 10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6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그 해 12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1920년 8월에 창립된 안동불교청년회에 참여하여, 이 단체가 운영한 노동야학의 교사로 활동하였다. 1920년 길안면에 설립된 진명학술강습회(進明學術講習會)가 1925년 보통학교 설립으로 폐지될 때까지 교사와 학감(學監)으로 활동하였으며, 서후면 금계마을에 설립된 광동학술강습소(廣東學術講習所)의 교사로 활동하였다. 1921년 7월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 안동지회의 간사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를 수용하여 청년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1월에 창립된 사상단체 화성회(火星會)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고, 3월 경북지역 사회주의자들이 대중 해방의 이론 연구와 실천을 표방하여 설립한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5년 2월 안동에서 개최된 경북청년대회(慶北靑年大會) 발기회 준비위원회 의사부(議事部)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3월에는 길안청년회(吉安靑年會)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5월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의 살 길’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으며, 8월 안동청년연맹(安東靑年聯盟)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고 이 단체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운동상으로 본 작금(昨今)의 안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0월에는 조선지광(朝鮮之光) 안동지국 기자로 활동하면서 안동기우단(安東記友團) 발기인과 준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25년 8월 예천에서 형평운동을 반대하며 형평분사를 습격한 사건이 일어나자, 안동의 사회단체들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한 ‘예천시민 대형평사폭행사건 조사회(醴泉市民對衡平社暴行事件調査會)’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활동으로 형평분사의 습격을 주도했던 예천청년회 회장 김석희(金碩熙) 등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여 1926년 2월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도산서원 소유의 토지를 소작한 농민이 소작료 납부 날짜를 어겼다는 이유로 서원 측으로부터 구타당하자, 안동의 사회단체들이 서원 철폐와 봉건적 지배질서의 타파를 목적으로 설립한 ‘도산서원철폐운동 연합위원회’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성토문을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 1월에 과거 사회운동의 반성과 향후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된 ‘전안동민중운동자 신년간친회(全安東民衆運動者新年懇親會)’에 참석하여 행사를 치르던 중, 치안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1927년 길안청년회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8월 동생 유연술과 함께 신간회 안동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9년 1월 신간회 안동지회 간사로 선출되었고, 8월에 서기장 겸 대표의원으로 선출되어 안동지회의 활동을 주도하였다. 1930년 2월 뚜렷한 이유 없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1930년 7월 ‘경북공산당사건’으로 알려진 조선공산당 야체이카 관련 사건으로 대구경찰서에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이후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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