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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鼎熙

鼎熙

1867. 1. 19 ~ 1933.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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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鼎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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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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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납세거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67년 1월 19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수곡리(水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유년 시절 한학을 수학하여 유교사상을 정신적인 가치로 여겼으며, 일제가 국권 강탈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자 국가 존망의 위기를 걱정하면서 항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무너지자 이에 분개하여 상복을 입고, 대로 만든 삿갓을 쓰고, “망국민은 하늘을 보기 부끄럽다”고 하며 자택에 은거하면서 민족적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 전주 류씨의 집성촌인 수곡리에서 종손의 신분으로 모든 문중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1912년 일왕이 죽자 일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힌극인들에게 상복 착용을 강요하였는데, 이 때 “일본국 군주가 죽었다고 하여 한국인이 그 상(喪)에 복(服)할 이유가 없으므로 상복 착용을 강요하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이유를 들며 이것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교육제도를 두고, ‘무부무군(無父無君)의 배움’ 또는 ‘퇴론괴강(頹論壞綱)의 교육’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으며 한국인들이 일제의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였다. 또한 일제가 주관하는 도로개수공사와 같은 근로동원 행사 및 납세의무 부과 정책, 사망신고서 제출 의무와 같은 정책은 국민을 좀먹고 잔인한 제도라고 의견을 피력하여 일제의 식민통치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1912년 6월 조선총독부령으로 제정된 「묘지화장장매장 및 화장 단속규칙」이 1914년 9월 10일 경상북도 일원에 시행되자 이것에 반발하여 묘적신고를 거부하였고, 1915년 7월 경 일가 친척 및 지역 주민들에게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또한 동네 면장인 유적호(柳迪鎬)에게 법령 실시 중지를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동시에 조선총독부 시정방침을 비판하는 내용의 서신을 안동경찰서에 보내는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5년 11월 2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그러나 즉시 항소하여 그 해 12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금고 5월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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