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응
安鍾應1845. 9. 21 ~ 1906. 5.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지평의병부대
- · 호좌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9)
관련 사건
- · 전기의병(지평의병부대
- · 호좌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9) 1845년 9월 21일 경기도 지평현(砥平縣) 상동면(上東面, 현 양평군 양동면)에서 태어났다. 이후 주소는 양평군(楊平郡) 양동면(楊東面) 석곡리(石谷里) 조현(鳥峴)마을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여성(呂聲), 호는 퇴앙(退央)이다. 제천의 유학자 이민정(李敏政)의 딸인 덕수이씨(德水李氏)와 혼인하였다. 아들은 지평의병부대에서 활동하다가 1896년에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에서 전군장(前軍將)·중군장(中軍將)으로 활약하던 안승우(安承禹)이다.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일찍이 아들 안승우와 함께 화서학파의 사상적 토대 위에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이후 아들 안승우에게 의병을 일으키기를 권유하고 안승우의 지평의병, 제천의병에서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실시하여 한국침략의 야욕을 드러내자, 각지에서 유림들을 중심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의암(毅菴) 유인석은 제천(堤川) 장담(長潭)에 문인들을 모아 이러한 상황에 유생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처변삼사(處變三事)’를 제시하고 스스로는 ‘도해(渡海)’를 택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후일을 대비하고자 하였다. 제자들 가운데 주용규(朱庸奎)·오인영(吳寅泳)·박주순(朴冑淳)·박정수(朴貞洙)·이조승(李肇承)·이정규(李正奎) 등은 유인석을 따라 요동으로 가기로 하였고, 이때 그의 아들인 안승우는 “지팡이 끝에 기를 달고 적을 꾸짖다가 죽는 것이 오히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며, 그것은 또한 큰 의리를 뒷세상에 펼 수도 있는 것이다”라며 의병을 일으키기를 주장하였다. 아들 안승우가 장담에서 스승 유인석과 동지들과 함께 시국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 때 급히 안승우를 불렀다. 당시 창 수십 자루를 만들어 동지들과 함께 강제로 삭발하여 일제의 시책에 부응하는 이속(吏屬)들을 처단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때 이춘영(李春永)이 고향 선배인 안승우를 찾아 왔다가 안승우가 제천에 가 있어 만날 수 없게 되자, 그에게 현 시국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그러자 이춘영에게 의병에 뜻이 있는 지평 포군(炮軍)의 지도자 김백선(金伯善)을 만나보라고 추천하였다. 당시 김백선도 의병을 일으킬 뜻을 세우고 지평의 포군 600명을 규합하여 지평군수 맹영재(孟英在)에게 가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권하였으나, 맹영재의 거부로 분노하고 있는 상태였다. 김백선을 찾아간 이춘영은 원주(原州) 안창리(安倉里)에서 집결하여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에 그는 장담에 있던 아들을 불러 이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는 것을 권유하였다. 안승우는 그 길로 안창리로 가서 의병부대에 합류하였고, 동문인 이범직(李範稷)·원철상(元澈常)·신지수(申芝秀)를 안창으로 불러 모았다. 세력을 규합한 의병들은 1896년 1월 의병을 일으키는 것을 선포하고 지평의병이 결성되었다. 지평의병은 원주관아를 점령하여 무기를 탈취하였으나, 곧 친위대(親衛隊)의 출병 소식을 듣고 제천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같은 해 1월 12일 의병부대가 제천에 무혈입성하고, 제천군수 김익진(金益珍)이 도망가자 서상렬(徐相烈)·이필희(李弼熙)·배시강(裴是綱) 등 아들 안승우의 동문들이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이들 중에는 유인석과 함께 만주로 망명한 자들도 있었으나, 지평의병부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이에 동참하였다. 이후 대장에 이필희, 군사에 서상렬, 중군에 이춘영, 선봉에 김백선이 임명되었고, 안승우는 군무도유사(軍務都有司)에 임명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월 단양(丹陽) 전투 이후 의병부대가 와해되면서 안승우·서상렬·이춘영 부대는 각각 영월(寧越)로 들어가 스승인 유인석을 만났다. 요동행을 준비하던 유인석은 제자들의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키기로 마음을 돌렸다. 영월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인석은 지평의병의 이춘영을 중군장에, 안승우를 전군장에, 김백선을 선봉장에 임명하여 지평의병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유인석이 이끄는 호좌(湖左)의병부대의 결성이었다. 호좌의병부대는 전기의병의 대표적인 의병 가운데 하나로 충주성(忠州城)을 점령하는 등의 전과를 거두었다. 지평의병부대의 결성과 활동은 이후 호좌의병부대로 연속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후에도 호좌의병부대를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1896년 5월 26일 안승우가 호좌의병부대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제천에서 교전 중 부상을 입고 관군에게 끌려가 사망하자 아들의 장사를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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