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옥
吳姬玉1926 ~ 생존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 · 한국광복군
- · 한국독립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6년 한말 의병장 오인수(吳寅秀, 본명 吳敬秀)의 손녀이며,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던 오광선(吳光鮮)과 정현숙(鄭賢淑, 이명 정정산)의 차녀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죽릉리(竹陵里) 어현동(於峴洞) 822번지이고, 태어난 곳은 만주 지린성(吉林省) 어무현(額穆縣)이다. 언니 오희영(吳熙英)도 광복군으로 활동하였다. 1939년 4월 중국 류저우(柳州)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언니 오희영과 함께 입대하여 대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가두 선전과 연극·무용 등의 공연 활동에 참여하였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는 광복진선 계열의 청년들이 1938년 11월 말 류저우에 도착한 직후 이듬해 2월 결성한 군사조직이다. 당시 칭화중학교(淸華中學校) 3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류저우는 일제 침략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항일의식이 약하였다. 따라서 청년공작대의 활동은 중국인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고 나아가 이들을 항일투쟁의 대열에 참여시키는 선전활동에 주력하였다. 연극의 내용은 주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이었는데, 극장을 찾은 관중들의 호응이 높아 꽤 많은 군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이들의 활동으로 중국인들의 항일 의지가 크게 고양되어 중국청년들로 조직된 중국청년공작대가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와 합작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국인들 중 청년공작대 대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밖에 일본군의 정보 수집과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탈출시키는 공작도 도왔다. 1941년 1월 1일 청년공작대가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됨에 따라 광복군의 일원으로 첩보 활동과 문화 활동을 계속하였다. 또 어머니 정현숙(鄭賢淑), 언니 오희영(吳姬英)과 함께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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