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영
高圭永1913. 3. 2 ~ 1932. 12.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부안노동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 · 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913년 3월 2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개정면(開井面) 통사리(通使里)에서 태어났다. 성장 과정과 집안 배경 등은 알 수 없다. 1932년 전북 옥구군 일대를 중심으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노동·농민운동 참여는 1931년 전북 일대에서 전개된 조선공산당재건운동(朝鮮共産黨再建運動)과 맞닿아 있다. 당 재건 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전주청년동맹(全州靑年同盟)의 김철주(金鐵柱), 강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군산 일대에서 날품팔이 혹은 정미소에서 일하던 한종식(韓宗植), 전주청년동맹의 서무 겸 재정부장으로 활동하던 김문옥(金文玉) 등이다. 이들은 1931년 5월부터 당 재건 운동의 일환으로 전주지구위원회(全州地區委員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산하 기관으로 가두청년단(街頭靑年團)과 독서회 등을 조직하여 전북 지역의 농민·노동자·청년·학생 등을 대상으로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때 이들의 활동에 동참하였다. 1932년 3월 15일 옥구군 대야면(大野面) 복교리(福橋里) 최종국(崔鍾國)의 집에서 이리공립농림학교(裡里公立農林學校)를 다니다 4학년 때 퇴학당한 강희석(姜喜錫)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강희석에게 전북 부안군(扶安郡)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권유하였다. 이 권유를 받아들인 강희석은 3월 30일 부안군 부령면(扶寧面) 신흥리(新興里)에 있는 이앵예(李鶯禮)의 집 뒷산에서 니혼대학(日本大學) 법과 전문부에서 1년간 수학했던 백남철(白南哲), 부안군 부령면사무소 면서기 견습생이었던 신남근(辛南根), 경성실업전수학교(京城實業專修學校) 학생 임장수(林長壽) 등과 회합을 하고 부안노동조합(扶安勞動組合) 재건을 결의하였다. 1932년 5월에는 최종국의 집에서 김병륜(金炳倫)을 만났다. 김병륜은 1931년 7월 강희석에게, 1932년 1월과 5월에는 같은 학교 4년생 조남윤(趙南允)과 윤석창(尹錫昶)에게 사유재산제도 폐지, 한국 독립 달성 등을 목적으로 한 독서회 조직을 지시한 인물이다. 김병륜에게 자신이 일하는 옥구 구마모토농장(熊本農場)은 농장주가 이전부터 소작인에게 불리한 ‘정조삽앙(正條揷秧)’을 강요하여 소작인들의 불만이 높다고 말하였다. 이때 김병륜이 소작인들과 함께 농민조합을 설립할 것을 제안하자 이에 응해 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옥구군 일대의 노동·농민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오래 지속하지 못하였다. 1932년 봄부터 1933년 3월까지 일본 경찰은 ‘전북적색비사(全北赤色秘社) 사건’, ‘충남전위동맹(忠南前衛同盟) 사건’ 관련자 200여 명을 체포하였다. 김철주 외 41명은 1934년 3월 1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보안법, 출판법 위반, 범인은닉죄 등의 죄명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32년 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병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이해 12월 2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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