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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판신

安判信

1894. 4. 14 ~ 193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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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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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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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무안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4월 14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 교촌리(校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은 지역에서 발이 넓고 명망 있는 유지(有志)였던 정순홍(丁淳紅)과 김순기(金順淇)의 주도 하에 일어났다. 이들은 평소 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차에,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외읍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켜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3월 19일 밤, 김순기의 집에서 뜻을 함께하는 10여 명을 불러 모아 계획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였으며, 거사는 바로 다음날인 3월 20일, 외읍면 장날을 이용하여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시간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밤새도록 민중의 궐기를 촉구하는 내용의 경고문(警告文)을 작성하였으며, 일부는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판결문이 남아 있지 않아 만세시위 준비 참여 여부와 역할을 특정할 수 없지만, 판결된 형량(刑量)으로 보았을 때 김순기 집에 모였던 사람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20일 새벽, 밤새 작성한 경고문을 외읍면 각 지에 붙이고 다니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만세운동 소식을 전파하였다. 오전 10시경 수십 명의 사람들과 외읍면 남산(南山)에 비밀리에 올라 접촉하였다. 이곳에서 태극기를 나누어 들고는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크게 소리치며 산을 내려와 외읍면 읍내로 진출하였다. 소리를 들은 주민들이 하나 둘 나와 행진에 동참하였다. 오후 1시 경 군중은 200여 명에 달하였다. 시위대가 무안보통학교(務安普通學校)에 이르렀을 무렵, 경찰관주재소에서 병력이 나와 대치하였으나, 시위대의 기세가 강하였으므로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였다. 이에 방향을 바꾸어 외읍면 일대를 행진하니 장을 보러 나왔던 사람들이 참여하여 오후 2시 경에는 대열이 500여 명에 달하였다. 이에 무안군수(務安郡守)와 목포경찰서장의 지휘 하에 일본의 지원 병력이 출동하여 시위대와 다시금 대치하는 한편, 때로는 무력으로 위협하고, 때로는 언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큰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오후 10시경 밤이 깊어가자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헌병들이 주도 인물들을 검속하는 과정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항소를 하지 않아 형이 그대로 확정되어, 이후 목포분감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4월 29일 영친왕 결혼에 따른 사면령으로 출옥하였는데, 출옥할 당시 목포의 청년들이 몰려들어 축하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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