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근
吳台根186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흥미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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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황해도 옹진군(瓮津郡) 흥미면(興嵋面) 석포리(石浦里) 출신이다다. 1919년 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59세로 기록된 것을 보아 1861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한문교사였으며, 그 해 4월 일어난 옹진군 흥미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황해도 옹진군에는 3월 1일 독립선언서와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이 전해졌다. 3월 3일 마산면 온천리 온정시장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동남면(東南面) 전당리(錢塘里) 만세시위, 3월 8일 마산면(馬山面) 만세시위, 3월 13일 부민면(富民面) 강령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이 일어났다. 그 후 옹진군 내에서 한동안 만세시위가 일어나지 않다가 4월 7일 야간에 가천면(伽泉面) 삼괴리(三槐里)에서는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옹진 지역 만세시위 영향을 받아 4월 13일 흥미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날 오전 11시 흥미면 안락리(安樂里) 남고동(藍槁洞)에서 박봉희(朴鳳禧)와 함께 주민 30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태극기를 흔들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동남면(東南面) 용호도주재소(龍湖島駐在所) 소속의 일제 헌병대가 시위현장에 나타나서 무력으로 시위대 6명을 현장에서 붙잡고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후 흥미면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 헌병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서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이 각성해서 정의와 인도를 부르짖으며 파리강화회의에서도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된 사실을 언급하며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징역 1년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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