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시
禹楨時1886. 9. 14 ~ 1935. 4.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장단군 장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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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6년 9월 14일 강원도 춘천군(春川郡, 현 춘천시)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만세운동 당시에는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장도면(長道面) 항동리(項洞里)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29일 밤, 독립을 목적으로 장도면 항동리 주민 수십 명을 이끌고 도덕암산(道德岩山)에서 봉화를 올리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인 3월 30일 밤에 장도면 항동리 주민 십여 명을 이끌고 시라위산에 올라가 전날과 똑같은 방법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31일 밤에는 장도면 항동리 주민 70여 명을 이끌고 장도면 고덕리(古德里)에 있는 장도면사무소로 향했다. 면사무소에 도착한 후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밤 11시가 되고 시위 군중이 140여 명까지 늘어나자 이들을 이끌고 장도면 석주원리(石柱院里)에 있는 면장 윤좌영(尹佐榮) 집으로 가서 같은 방법으로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4월 2일에는 항동리 구(舊) 시장 자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항동리 주민들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고랑포(高浪浦) 시장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시위대열에 합세하여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시위 군중의 규모가 100명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이후 출동한 일제 헌병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대해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8개월 후인 1920년 4월 28일 사면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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