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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화

禹楨和

1893. 4. 8 ~ 1945.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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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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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장단(長湍)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장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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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9)

관련 사건

  • · 장단군 장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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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9) 1893년 4월 8일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장도면(長道面) 항동리(項洞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말과 4월초에 걸쳐 장도면 항동리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1919년 3월 29일 형인 우정시(禹楨時)와 함께 야음을 틈타 경기도 장단군 장도면 항동리 주민 수십 명을 이끌고 도덕암산(道德岩山)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봉화를 올리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31일에는 우정시와 함께 장도면 항동리에서 마을 주민 70여 명을 모아 장도면 고덕리(古德里)에 있는 장도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 때 태극기를 들고 시위 군중을 이끌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밤 11시에는 14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과 함께 장도면 석주원리(石柱院里)에 있는 면장 윤좌영(尹佐榮) 집으로 찾아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틀 뒤인 4월 2일 오전 10시에는 우정시와 함께 항동리 주민들을 이끌고 항동리 구(舊) 시장 자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정오 때까지 시위 군중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고랑포(高浪浦) 시장으로 향하던 100여 명의 사람들이 시위 대열에 합세하였다. 이들의 합세로 구 시장에서의 시위 규모가 커지자 일본 헌병들이 출동하였고 이후 우정시와 함께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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