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영준
玉英俊1892. 2. 17 ~ 1957. 4.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의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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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2년 2월 17일 경상남도 거제군(巨濟郡) 장승포면(長承浦面) 몽포리(夢浦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옥영준(玉永俊)을 사용하였다. 1906년 부친을 따라 만주 환런현(桓仁縣)으로 건너갔으며, 이주 후에는 펑톈성(奉天省) 싱징현(興京縣) 홍묘자(紅廟子)에 거주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중국 만주에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펑톈성 류허현(柳河縣)에 독립군 본부를 두고 결성된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1919년 가담하였다. 국내외 모두 100여 개소의 지단, 지부들이 설치되는 가운데 10월 대한독립단의 재무부장 전덕원(全德元)과 함께 국내에 들어가 주로 평북에서 다수의 청년을 규합하여 단원들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때 평북 용천군 북중면(北中面)의 장일갑(張日甲)으로부터 5,000원, 철산군(鐵山郡) 정혜면(丁惠面) 장송동(長松洞) 임상민(林尙民)으로부터 200원, 그의 친척 임천민(林天民)으로부터 500원 총 5,700원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평북 용천군에서 붙잡혔다. 1921년 1월 30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이어갔으며, 1922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직제와 인물 배치에 불만을 품고 군민 대표가 환런현에서 국내 일본 기관의 파괴를 목적으로 조직된 의군부(義軍府)의 군무부장 전덕원과 함께 활동하였다. 국내와 국외를 연락하며 활약하다가 1927년 2월 국내에서 전덕원·장한성(張漢星)·김용보(金龍甫)·김효선(金孝善)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신의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1928년 3월 11일 신의주지방법원 예심에서 김용보·김효선과 함께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백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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