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學龍
安學187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돌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신돌석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경북 영양군(英陽郡) 수비면(首比面) 계곡동(桂谷洞, 현 수비면 계리)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33세로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그 밖에 자세한 성장 과정 및 집안 배경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7년 (음)8월 신돌석(申乭石·申乭錫)의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신돌석은 평민 출신이었으나 1896년 말 영해군(寧海郡, 현 영덕군 영해면)의병부대의 중군장(中軍將)을 지낸바 있었다. 이후 을사늑약이 맺어졌다는 사실에 격분하여 1906년 (음)3월 13일 영덕(盈德)에서 봉기하였다. 같은 고향 출신인 신돌석의 명성을 듣고 자진해서 의병에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8월 신돌석 의병부대는 영양분파소(英陽分派所)를 습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해 9월 15일 영양에서 조금 떨어진 골짜기에서 신돌석 의병부대와 일본군 대위 데지마(手島)가 이끄는 부대가 격돌하여 승리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1월 초 의병부대는 방향을 틀어 경북 봉화군(奉化郡)을 습격하였고 경무분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획득하였다. 6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영해분견소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1907년 내내 신돌석의 의병부대는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07년 8월 울진군(蔚珍郡) 근남면(近南面) 행촌동(杏村洞, 현 행곡리)에서 의병부대를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붙잡혔다. 1909년 3월 31일 윤반석(尹盤石)과 함께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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