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목
元用睦187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서흥군 도면 능리 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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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도면(道面) 두의리(杜義里) 출신이다. 1919년 고등법원 판결문에 44세로 기재되어 있어 1876년생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1919년 3월 10일 서흥군 도면 능리(陵里) 장터 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1일 이미 황해도 서흥군에는 3월 1일에 독립선언서와 만세운동 발발 소식이 전달되었다. 서흥군 종교계 인사들과 독립을 염원하는 인사들은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도면 두무리(杜茂里)에 사는 개신교 전도사 김성항(金成恒)은 평양에서 윤종식(尹宗植)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받아 왔다. 김성향의 연락을 받고 같은 마을에 사는 박이도(朴履道)와 학교 교사 원용팔(元用八) 등과 함께 장날이 서는 3월 10일 아침 8시 능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만세시위를 눈치 챈 일제 헌병에 의해서 3월 9일 저녁 6시에 원용팔과 함께 붙잡혔다. 그 다음날에는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한 박이도도 일제 헌병에 의해서 연행되었다. 이로 인해 3월 10일 능리 장터에서 계획되었던 만세시위는 무산될 위기에 처하였다. 하지만 3월 10일 소사면(所沙面) 송화리(松花里)에 사는 김두순(金斗淳)과 서당 교사 김종철(金宗喆) 등은 주민들을 이끌고 능리로 갔다. 소사면(所沙面) 방곡리(防谷里)에 거주하는 서당 교사 원광흠(元光欽)은 학생들과 함께 능리 장터에 도착하였다. 정학주(丁學柱)는 도면 교회당 등지에서 교인들을 비롯해서 부인 10여 명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0일 오후 4시 능리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정학주·김두익(金斗益)·구성빈(具聖彬)·김원보(金元甫)·유병관(劉秉寬)·유기호(劉基鎬)은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헌병과 경찰은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현장에서 구성빈·김두익 등을 붙잡았다. 도면 능리 장터 시위를 계획한 혐의로 붙잡혔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서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그러자 다시 상고하였지만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는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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