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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俊國

俊國

1898. 9. 1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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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俊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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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희천(熙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정의부
  • · 조선혁명군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8년 9월 14일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동창면(東倉面) 신족리(新竹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양백산(梁白山)을 사용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주 후에는 서간도 류허현(柳河縣)에서 거주하였다. 정의부에서 활동하다가 고초를 겪었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서로군정서·통의부·광정단 등 8개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하여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로, 관할 지역 내의 한국인들을 위해 입법·사법·행정기관을 갖춘 민정기관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1928년 4월경 류허현 고산자(孤山子)에서 이한영(李漢永)의 권유로 정의부 의용군에 가담하여 제3중대 서기로 활동하였다. 제3중대는 초기에 콴뎬현(寬甸縣) 하루하(下漏河)에 소재지를 두고 활동하였고, 무장단원은 80여 명이었다. 주로 화뎬(樺甸)·이퉁(伊通)·판스(磐石)·어무(額穆)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한인들의 치안을 관리하고 일제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9년 3월 민족유일당 조직에 참여한 각 단체와 정의부·신민부·참의부 대표들은 합동기관으로 국민부의 설립을 선언하였다. 민족유일당조직을 조선혁명당으로 개편하고, ‘이당치국(以黨治國)’의 원칙 아래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였다. 300여 명의 대원들로 구성된 조선혁명군은 한인들의 안전, 친일파 처단, 국내 잠입 작전 등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개편 당시 조선혁명군에 가입하였고, 이듬해 5월경에는 조선혁명군 참사로 활동하였다. 대원들을 파견하여 퉁화현 육도강(六道江)에 있는 황사일(黃士日)에게서 의무금을 징수하였고, 대원 이영관(李永寬)·사병익(史秉益)을 파견하여 퉁화현 사도강(四道江)에 위치한 국민부 지부에 문건을 보내기도 하였다. 만주사변 이후 정세가 변화하면서 만주지역 한인 독립운동에 세력에 대한 검거는 더욱더 심화되었다. 1932년 3월초까지 서간도 소재 9개현에서 83명이 체포되었다. 당시 펑톈성(奉天省)에 있는 일본영사관 경찰들에게 붙잡혀, 신의주로 송치되었다. 1933년 1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과 살인미수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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