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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春吉

春吉

186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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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春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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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경흥(慶興)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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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국민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6) 함경북도 경흥군(慶興郡) 증산면(甑山面)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5년 당시 54세인 것으로 보아 1861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은 1901년 함북 회령군(會寧郡)에 변계경무서(邊界警務署)를 설치하여 간도 지역에 대한 관리를 시작한 이래, 1902년 간도에 대한 호적 조사를 위해 이범윤(李範允)을 간도시찰사(間島視察使)로 임명하였다가 1903년에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로 임명해 이 곳 주민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등,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였다. 이범윤은 이 시기 산포수와 장정들을 모아 충의대(忠義隊)를 편성하여 한인 보호를 위한 군대를 운영하였다. 이후 1904년 6월 15일 청(淸)은 대한제국과 중한변계선후장정(中韓邊界善後章程)을 체결하여, 그 해 12월 이범윤의 간도 관리는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이범윤은 1906년 초 700명의 충의대원과 함께 러시아령의 노보키예프스키(Новокиевский, 煙秋)로 건너갔고, 1908년 초 그곳에서 연추의병부대(煙秋義兵部隊)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곳은 안중근(安重根)의 활동무대이기도 하였다. 같은 해 연추의병부대는 함남·함북 지역을 대상으로 국내 진공작전을 실행하였는데, 이 때에 이르러 이범윤의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한편 만주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일대에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한인이 이주해 정착했는데, 이에 따라 1908년 훈춘현 지역의 한국인을 중심으로 국민회(國民會)가 결성되었고, 훈춘현 내 황구(黃溝)·중구(中溝)·청수구(淸水溝)·중강자(中崗子)·노천구(魯川溝)를 관할하였다. 1910년 청 당국으로부터 해산 명령을 받았으나, 국민회 조직은 이후 계속 유지되었다. 이 때 지린성 훈춘현 황구로 이주하여, 1911년에 국민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국민회 황구 지역의 회원은 60여 명에 이르렀다. 또한 1915년 훈춘현에서 손자인 양하청(梁河淸), 충의대 출신의 황병길(黃炳吉)과 더불어 배일사상을 고취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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