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齊賢
齊賢1892 ~ 1959. 6. 15
관련 단체
- · 새크라멘토 한인부인회
- ·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
- ·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등 활동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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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료에 따르면 189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3년 사진 신부로 미국으로 건너가 양주은(애국장, 1997)과 결혼하였다. 본명은 이제현 (李齊賢)이다. 이후 미주 한인 사회 사진신부의 대모역할을 하였으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913년 샌프란시스코(桑港, San Francisco) 한인청년회에서 전도국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인청년회 관련 일지 작성을 하였다. 1914년 새크라멘토(朔都, Sacramento)로 이주한 후 웹윗청년회에서 전도국장으로 활동하였다. 1917년 3월 삭도부인회와 맨티카(Menteca) 여자전도회와 합동하여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사업을 후원하고 일본 상품 사용 배척을 목적으로 한인부인회(韓人婦人會)를 결성하였을 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8년 3월에는 맨티카에서 운영되고 있던 한흥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한인 2세대들이 한인으로서 정체성 유지와 독립운동가 양성에 앞장섰다. 1919년 5월 18일 권영복·김자혜와 함께 새크라멘토 한인부인회 대표로 다뉴바(Dinuba) 지방에 있던 신한부인회(新韓婦人會) 회장 강원신과 함께 부인회 통합 움직임을 주도하였으며, 8월 5일 대한인여자애국단(大韓人女子愛國團)을 결성하여 총단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대한인여자애국단은 1919년 5월 18일 새크라멘토지방 한인부인회와 다뉴바지방 신한부인회가 중심이 되어 로스앤젤레스(羅城, Los Angeles)지방 부인친애회 대표 임메블·박순애·안혜련·김혜원, 상항지방 한국부인회 대표 전그레이스·박애나·최유실, 윌로우스(Willows)지방 부인회 대표 임광명 등과 논의하여 미주 각 지방에 난립되어 있는 여러 부인회를 통일하고 독립운동을 후원할 목적으로 설립한 최대의 미주 여성 단체였다. 1919년 7월 9일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으로 취임한 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에게 일본의 한국인 학살과 만행을 고발하고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한국민의 보호와 독립을 지지를 호소하는 청원서를 보냈다. 1920년 3월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지방회 주최로 3·1운동 기념식을 거행하자 「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시에 따르고 독립군이 일본과 일전을 치를 때 여성으로서 여기에 적극 참여할 것을 주장하였다. 1924년 8월에는 대한인여자애국단 창립 5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하면서 미주 한인사회와 독립운동에 있어 여성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1925년에는 활동지역을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후 대한인여자애국단 샌프란시스코지부에서 서기로 활동하였다. 1927년 9월 샌프란시스코지부에서 ‘공산주의가 민주주의보다 승함’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주최하여 여성들의 국제 인식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28년 3월에는 샌프란시스코지부 단장으로 선출되어 황보석·백낙희·하명원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0년 대한인여자애국단 총단장으로 선출되었으며, 5월에는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Stevens, D. W.)를 처단하였던 장인환(張仁煥)이 자살로 삶을 마치자 그를 추도하는 장례식을 주관하였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영되는 국어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여 어머님과 아버님날 등의 각종 행사를 주관하면서 한인사회를 이끌어가고 독립운동의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1931년 대한인여자애국단 총단 서기로 선출되었다. 6월에는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신한민보』 신문대금 수봉위원으로 김동우와 함께 선정되었다. 8월에는 샌프란시스코지방회가 국치기념식을 개최하자 여기서 「망국통사담」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여 항일의식과 독립의식 함양에 앞장섰다. 1932년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구제원으로 선정되었다. 오클랜드지방회와 공동으로 3·1운동 기념식 행사를 개최하기로 의결하고, 준비위원장으로 선정되어 황보석·전그레이스·김자혜·조인선 등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였다. 3월부터는 대한인여자애국단 총단 서기로 선정되었다. 1933년 대한인여자애국단 샌프란시스코지부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1935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재무원으로 선정되어 한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 수합에 노력을 기울였다. 1936~37년까지 샌프란시스코지부 위원장,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학무원을 역임하며 대한인국민회, 대한인여자애국단 창립 기념식 등을 주관하며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1938년 3월에는 샌프란시스코지부 단장으로서 안창호 추도식을 거행하면서 독립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1938년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학무원으로 선출되었으며, 6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둥이었던 이동녕(李東寧)이 1940년 3월 13일 치장(綦江)에서 서거하자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1941년 샌프란시스코지부 단장과 샌프란시스코지방회 교육위원으로서 활동하다가, 이듬해 단장직과 함께 상항지방회 실업위원으로 선정되었으며, 3·1운동 기념식에서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여 독립 쟁취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1944년에는 샌프란시스코지부 서기, 1945년에는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1919년 7월 26일 부인애국단 지원금 명목으로 3원, 1920년 7월부터 1945년 8월 16일까지 독립금 명목으로 42원, 1931년 6월 4일부터 1945년 3월 15일까지 국민의무금 명목으로 총12차례에 걸쳐서 40원, 1926년 1월 28일부터 1941년 6월 26일까지 대한인국민회 보조금 명목으로 26원, 1929년 3월 14일과 1936년 3월 5일에 3·1운동 기념금으로 3원, 1932년 6월 9일 상항지방회 의연금으로 1원, 1943년 2월 25일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후원금으로 10원, 1944년 7월 20일부터 1945년 7월 12일까지 상조금 명목으로 3원 등을 제공하여 중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그리고 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있어 재정적인 기반을 제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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