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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東鎭

東鎭

1878. 9. 10 ~ 1956.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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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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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능주(綾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능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양회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양회일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878년 9월 10일 전라남도 능주군(綾州郡) 도림면(道林面) 증동(甑洞, 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증동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자는 오선(五善)이며, 양종수(梁宗洙)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전통 유학 교육을 받은 유학자로, 1907년 1월 양회일(梁會一)이 의병을 일으키는 격문을 발(發)하며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하여 의병운동에 참여하였다. 증동 마을에 쌍산의소(雙山義所)가 설치되었으며,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군량을 확보하는 한편 대장간을 마련하여 무기를 제작하였다. 또한 의병부대를 3군 체제로 편제하여 군사훈련을 시행하는 등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전투 준비를 갖추어 갔다. 전투 준비를 마친 쌍산 의병부대는 1907년 4월 21일 능주 공략을 시작으로 화순(和順) 등을 돌면서 각 군에 소재되어 있던 관공서를 주로 공격하였다. 그 과정에서 무기와 물품 등을 확보하거나 공문서를 불태웠으며, 전신주를 파괴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친일 세력을 비롯하여 일본 상인과 상가 등을 공격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이어서 이들은 광주(光州)를 교두보로 삼아 상경할 목적으로 광주로 향하였으나, 화순군(和順郡) 동복면(同福面)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도마치(圖馬峙)에서 추격해 오던 일본군의 포위 공격을 받아 실패하였다. 이때 상당수의 희생자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에 붙잡혔다. 도마치 전투 이후 은신해 있다가 전남 보성(寶城) 출신의 이백래(李伯來)가 1908년 1월 능주에서 쌍산 의병부대를 재결성하자 이에 동참하여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이들은 전남 강진(康津)장흥(長興)·보성 등지에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1909년 일제가 호남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자행한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으로 인해 의병부대를 이끌던 이백래가 사망하면서 의병부대도 해산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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