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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文淳

文淳

1862. 3. 28 ~ 1927.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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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文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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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南原)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남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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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양한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9)

관련 사건

  • · 중기의병(양한규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9) 1862년 3월 28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현 남원시) 주생면(周生面) 상동리(上洞里)에서 출생하였다. 남원군 일대에서 장사를 통해 생계를 꾸려간 상인 출신이다. 1905년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남원 출신의 양한규(梁漢奎)가 박재홍(朴在洪)·유병두(柳秉斗) 등 유림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영·호남 등지에서 의병부대에 몰려든 사람들이 1천여 명이 넘었으며, 일반 평민들도 이에 호응하여 참여하였다. 동료들과 함께 양한규를 의병장에 추대하고 그를 중심으로 남원성을 점령한 뒤 무기 등 군수품을 확보하였다. 이어 지리산(智異山)의 험한 산세에 의지하여 전세를 강화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1차적으로 남원에 주둔해 있던 진위대(鎭衛隊)를 공격하여 무기와 군수품을 확보하고, 지리산에서 전세(戰勢)를 강화한 뒤 서울로 북상할 계획이었다. 마침 1906년 12월 말 연말연시를 기해 남원성에 주둔해 있던 남원진위대 장병들이 휴가를 떠난 틈을 이용하여 공격하기로 하였다. 1906년 (음)12월 30일 밤 동료들과 함께 남원읍 야산에 집결한 뒤 정월 초하루 날이 밝자마자 남원성으로 진격해 갔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진위대 군인과 순검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경부 1명은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이들은 별다른 손실을 입지 않고 손쉽게 남원을 점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원성 점령 소식을 듣고 곧바로 공격해 온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의병장 양한규가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이때 양한규는 끝까지 검을 놓지 않은 채 남겨진 동지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주기를 강권하며 숨을 거두었다. 의병부대의 중심을 잡아주던 양한규가 전사하자 크게 당황하고 사기가 떨어졌다. 이러한 의병부대의 동요를 눈치 챈 일본군은 재차 공격을 가해 왔으며, 이에 당황한 의병들은 하나둘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남원성을 빠져나와 은신하였으나, 일본군의 수색으로 붙잡혀 종신형을 받은 후 전남 진도(珍島)로 유배되었다. 1907년 11월 순종의 특사로 풀려났지만 체포 당시의 고문 후유증으로 병고에 시달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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