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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成彦

成彦

187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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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成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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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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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채영찬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채영찬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909년 당시 38세이므로 1872년생으로 추정된다. 채영찬(蔡永贊)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채영찬 의병장은 최익현(崔益鉉) 의병부대로 출신으로 1908년 무렵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이때 채영찬 의병부대 소속으로 백낙구(白樂九) 의병부대와 협력하여 순천(順天) 공략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순창군 하치등면(下置等面, 현 쌍치면) 석동암(石東岩)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이후 의병부대의 잔존 의병들을 규합하여 같은 해 12월 화승총(火繩銃) 2정(挺)으로 무장한 의병 5~6인의 소규모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같은 달 하치등면 능동(綾洞)의 동장(洞長)에게 금 3관문(貫文)을 모집하는 등, 순창군과 담양군(潭陽郡)일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1909년 2월 16명의 의병들과 함께 순창군을 근거지로 담양군 용면(龍面)·천면(泉面, 현 금성면) 방면까지 활동 지역을 확대하였다. 1909년 2월 23일 순창군 하치등면 금정동리(金井洞里, 현 쌍치면 금평리) 자택에서 일본군에 의해 붙잡혔다. 1909년 4월 14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종신징역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31일 기각되었다. 옥고를 겪던 중, 1914년 2월 26일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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