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壽黙
壽黙1876. 6. 24 ~ 1952. 1.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쌍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쌍산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76년 6월 24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이양면(梨陽面) 쌍봉(雙峯) 마을(현 쌍봉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양도인(梁道仁)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조광조(趙光祖)와 교우했던 조선 중기 문신 양팽손(梁彭孫)과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을 지낸 양산숙(梁山璹)의 후손으로 전라도 일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집안 내력은 그를 비롯해 다수의 제주 양씨 문중 사람들이 의병부대에 참여하게 된 동기로 작용하였다. 1907년 1월 전남 화순군 이양면 출신 양회일(梁會一)이 항일투쟁을 목표로 의병을 일으키자, 의병부대의 참모(參謀)로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참모로 참여한 쌍산(雙山)의병부대는 증동(甑洞) 마을(현 이양면 증리)에 의소(義所)를 설치한 뒤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군량을 확보하거나 대장간에서 무기를 제작하였다. 또한 의병부대를 선봉(先鋒)-중군(中軍)-후군(後軍) 중심의 3군 체제로 편제하여 군사훈련을 시행하는 등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전투준비를 갖추어 갔다. 전투준비를 마친 쌍산의병부대는 1907년 4월 21일 능주(綾州) 공략을 시작으로 화순 등을 돌면서 각 군에 소재되어 있던 군아(郡衙)와 주사청(主事廳), 우편소(郵便所), 경무서(警務署) 등 주로 관공서를 공격하면서 무기와 물품 등을 확보하거나 공문서를 불태웠으며, 전신주를 파괴하였다. 또한 일진회원 등과 같은 친일 세력을 비롯하여 일본 상인과 상가를 공격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이어서 이들은 광주(光州)를 교두보로 삼아 상경할 목적으로 광주로 향하였으나 동복(同福, 현 화순군 동복면)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도마치(圖馬峙)에서 추격해 오던 일본군의 포위 공격을 받아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양회일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붙잡혔다. 도마치 전투 패전 이후 산중으로 출계하여 은둔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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