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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在煥

在煥

187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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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在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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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능주(綾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능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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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양재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양재환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전라남도 능주군(綾州郡) 호암면(虎岩面) 행동(杏洞, 현 화순군 도암면 행산리)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이 한창이었던 1909년경 전남 능주군에서 의병부대를 꾸려 봉기하였다. 1909년 3월부터 일제는 지역 주민들이 의병들을 동정하고 그 정황을 비밀로 하면서 일제 군경에게 보고하지 않는 실정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일제는 의병 진압의 선결 조건으로 지역사회와 의병 사이 연결고리를 끊어야한다고 판단하였다. 토벌군을 세분하여 한정된 지역 안에서 수색을 실행하여 전후 좌우로 왕복을 계속하고 기병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의병들이 자기네 동태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엄중한 수색 검거 방법 아래에서 당연히 지역주민들의 피해도 무척 컸다. 유격전을 하는 의병과 일반 주민을 가리기 힘들었던 일본군은 ‘폭도’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체포하거나 탄압했기 때문이다. 의병을 거병한 시점과 활동 내역이 자료의 한계로 명확치 않다. 그러나 1909년 시점에 의병부대는 15명 내외의 매우 소규모였고 일제의 강력한 탄압에 오래 항전하지 못하였다. 수세에 몰렸다고 판단하여 1909년 10월 7일 자수하였다. 임시한국파견대사령부는 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남한대토벌’의 결과를 기록했는데, 의병장 61명을 체포했고 23명을 살해했으며, 19명이 자수했다고 한다.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동, 강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14년 5월 24일에 칙령 104호에 의해 징역 4년 8월 9일로 감형되었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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