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昌黙
昌黙1871. 10. 18 ~ 1930. 12. 2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쌍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쌍산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71년 10월 18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이양면(梨陽面) 쌍봉(雙峯)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경윤(敬允)이다. 어릴 적부터 용모가 뛰어났고 평소 담략이 있었다고 전한다. 집안은 조광조(趙光祖)와 교우(交友)했던 조선 중기 문신 양팽손(梁彭孫)과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을 지낸 양산숙(梁山璹)의 후손으로 전라도 일대 명문가이다. 1907년 1월 같은 마을의 양회일(梁會一)이 의병을 일으키자, 다수의 문중 사람들과 함께 쌍산의병부대(雙山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쌍산의병부대는 증동(甑洞) 마을에 의소(義所)를 설치한 뒤, 군량을 확보하거나 대장간에서 무기를 제작하는 등 의병활동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다. 또한 의병부대를 선봉(先鋒)-중군(中軍)-후군(後軍) 중심의 3군 체제로 편제하여 군사훈련을 시행하였다. 전투준비를 마친 쌍산의병부대는 1907년 4월 21일 능주(綾州) 공략을 시작으로 화순 등 각 군을 돌면서 군아(郡衙)와 주사청(主事廳), 우편소(郵便所), 경무서(警務署) 등 관공서를 주로 공격하여 무기와 물품 등을 탈취하거나 공문서를 불태웠으며, 전신주를 파괴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일진회원과 같은 친일세력과 일본 상인과 상가 등을 공격하면서 항일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이어서 광주(光州)를 교두보로 삼아 상경할 목적으로 광주로 향하였다. 하지만 동복(同福)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도마치(圖馬峙)에서 추격해 오던 일본군의 포위 공격을 받아 실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상당수의 희생자가 생겼고 양회일 등 많은 사람들이 붙잡히고 말았다. 도마치 전투 이후의 의병활동 행적은 알 수 없으며, 1930년 12월 2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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