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致彦
致彦미상 ~ 190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호남 일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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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강진면(江津面) 용강리(龍江里, 현 문방리) 출신이다. 출생일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명은 양치원(梁致元)·양치운(梁致云)이 있다. 의병을 일으키기 전까지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7년 이후 호남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시킴에 따라 이를 계기로 의병투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항일투쟁의 규모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참가 의병의 계층 또한 다양해졌다. 호남지역 의병은 여타 지역보다 더욱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하였다. 전남 의병은 크게 기삼연(奇參衍) 부대, 심남일(沈南一) 부대, 안규홍(安圭洪) 부대로 대표되며, 세 구역으로 나누어 전개되었다. 전북은 김동신(金東臣)·문태수(文泰洙)·이석용(李錫庸) 부대가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호남지역에서 기의(起義)하여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이래 약 50여 명~9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임실(任實)·태인(泰仁)·순창(淳昌)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1월 무렵에는 태인군 산내면(山內面) 종성리(鍾城里) 출신이자 전남 낙안(樂安)군수를 역임한 임병찬(林炳贊)과 함께 태인군 산내면과 고현면(古縣面) 인근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4월 18일 밤에는 이석용(李錫庸) 의병부대와 협동 작전으로 약 1백여 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임실군 수비대 및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기병(騎兵) 1명을 처단시키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활동하다가 1908년 8월 이전에 일본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 사후 부하 제춘삼(諸春三)이 남은 부대원들을 이끌고 그 뜻을 이어받아 의병활동을 이어나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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