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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會龍

會龍

1881. 10. 6 ~ 1959.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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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梁會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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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和順)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쌍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쌍산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1년 10월 6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이양면(梨陽面)에서 양재욱(梁在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이견(而見)이며, 호는 연파(蓮坡)이다. 조선 중기 조광조(趙光祖)와 교우하였던 문신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며 쌍산(雙山)의병부대를 이끌었던 양회일(梁會一)이 친형이다. 친형 양회일과 함께 척왜(斥倭)와 역신(逆臣) 오적(五賊)을 응징하기 위한 창의격문(倡義檄文)을 발표하고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을 지낸 양산숙(梁山璹)의 후손이라는 집안 내력으로 제주 양씨 문중 사람들이 의병부대에 대거 참여하였다. 1907년 3월 쌍산의병부대는 이후 증동(甑洞) 마을로 이동하여 의소(義所)를 설치한 뒤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군량이나 무기를 확보하는데 주력하였다. 또한 의병부대를 선봉(先鋒)-중군(中軍)-후군(後軍) 중심의 3군 체제로 편제하여 군사훈련을 시행하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전투준비를 갖추어 갔다. 1907년 4월 21일 쌍산의병부대는 능주(綾州) 공략을 시작으로 화순 등 전남 각 군을 돌면서 군아(郡衙)·주사청(主事廳)·우편소(郵便所)·경무서(警務署) 등의 관공서를 주로 공격하였다. 그 과정에서 무기와 물품을 탈취하거나 공문서를 불태웠으며, 전신주를 파괴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진회(一進會) 회원과 같은 친일세력과 일본 상인, 상가를 공격하며 항일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이어서 광주(光州)를 교두보로 삼아 상경할 목적으로 광주로 향하다가 동복(同福)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도마치(圖馬峙)에서 일본군의 포위 공격을 받게 되었다. 도마치 전투에서 쌍산의병부대는 큰 피해를 입었고 접전 중 총상을 입은 상태로 친형 양회일을 비롯한 다른 의병부대원들과 함께 붙잡혀 광주감옥에 투옥되었다. 광주감옥에서 고초를 겪다가 1908년 석방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광복 이후 1950년대 제주 양씨 문중의 도움을 받아 친형 양회일이 남긴 시문(詩文)과 의병 활동 기록을 모아 유고집인 『행사실기(杏史實記)』를 편찬·간행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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