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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성

魚允星

미상 ~ 190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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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어윤성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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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경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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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어윤성(魚允成)이 있다. 1907년 경기도 광주(廣州)·과천(果川) 일대에서 의병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였다. 일제는 러일전쟁 이후, 국제 사회에서 열강들의 승인으로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1906년에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또한 1907년 7월에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으며, 정미 7조약 체결 이후에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로써 1907년 8월부터 전국적으로 의병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시대 상황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의병 활동에 가담하였다. 특히 소모장(召募將)으로 경기도 광주(廣州)·과천(果川)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경기도 과천은 서울과 가까우면서 일제의 육군 보병 제23연대의 병력이 상주하고 있으며, 수원경찰서의 순사대, 경성 헌병대의 분견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며, 지리적으로 근거지가 될 큰 산이 없어 대규모의 의병부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이에 소규모·게릴라 성격의 의병 활동이 전개되었다. 1907년 (음)11월 13일 총검을 휴대하고 수십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경기 광주군 송파진(松波津)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또한 1907년 12월 5일, 100명의 의병과 함께 뚝섬의 일본인 파출소를 습격하고,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을 처단하였으며,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이외에도 일제에 협조한 친일 부호와 동임(洞任) 등을 처단하며 항일무장투쟁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08년 1월에 과천군 죽암리(竹岩里)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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